인턴 대신 교수 초진… 1시간 빨라진 응급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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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응급실 달라진 풍경
신속 진료 위해 전담교수제 도입
인턴-전공의 안거치고 바로 진찰
대기환자수 줄어 혼잡 개선 효과

교수-전공의-인턴-간호사 한 팀으로 대기 환자가 많은 8월 31일 오후 서울대병원 응급실. 교수 없이
 한 전공의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위쪽 사진). 응급실 진료 시스템이 개선된 직후인 6일 응급의학과 교수의 지도 아래 인턴 
전공의 간호사(오른쪽부터)가 한 팀이 돼 실신 환자인 이모 씨를 진료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진단과 치료 과정에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게 됐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교수-전공의-인턴-간호사 한 팀으로 대기 환자가 많은 8월 31일 오후 서울대병원 응급실. 교수 없이 한 전공의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위쪽 사진). 응급실 진료 시스템이 개선된 직후인 6일 응급의학과 교수의 지도 아래 인턴 전공의 간호사(오른쪽부터)가 한 팀이 돼 실신 환자인 이모 씨를 진료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진단과 치료 과정에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게 됐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이렇게 낯선 서울대병원 응급실 모습은 처음이었다. 낮에도 50명 넘게 대기 환자가 대기실 복도를 가득 메우고 응급실 안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들로 어수선하기 그지없어야 할 서울대병원 응급실인데 6일 오후는 달랐다.

중증환자 전담 진료구역을 재정비하느라 병상 20개가량을 치웠는데도 대기 환자는 서너 명 정도였다. 환자와 보호자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을 만큼 응급실 안은 차분하고 조용했다.

이날 오후 2시 응급실에 실신 환자 이모 씨(62)가 실려 왔다. 흔한 스트레스성 실신으로 보였지만 급성 심장질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평소라면 인턴, 전공의를 차례대로 거쳐 응급의학과 교수가 정밀 검사를 결정하기까지 아무리 빨라도 1시간 이상 걸렸을 일이다. 하지만 이날 이 씨는 응급실에 도착해 곧장 담당 교수의 진찰을 받을 수 있었다. 진료와 검사 결과 “별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 씨의 부인 오모 씨(52)는 “예전엔 응급실에서 한참 기다렸다가 퇴원한 적이 있는데 의료진 여러 명이 한 번에 최종 결정을 내려주니 응급실에서 힘들게 기다리는 고생이 없었고 믿음도 갔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은 중증 응급환자를 처음부터 인턴이나 전공의가 아닌 교수가 직접 진료하는 ‘응급실 전담교수 진료시스템’을 4일부터 도입해 시행 중이다. 이 전담 교수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12시간 정도 근무한다.

이 씨는 응급의학과 교수와 전공의, 인턴, 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팀 덕분에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던 이전과 달리 훨씬 빠르게 최종 진단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꼭 필요한 검사는 더 신속하게 받았고, 불필요한 검사는 줄었다. 이 시스템은 응급실의 과밀도를 줄이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전공의 송은곤 씨(32)는 “교수의 진료 모습을 옆에서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장점까지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은 전국에서 가장 붐비는 곳으로 악명이 높다. 응급실에 한 해 동안 환자들이 머문 시간의 총합을 ‘병상 수×365일×24시간’으로 나눈 ‘과밀도지수’가 2015년 182.3%로 전국 1위. 이는 병상이 100개인 응급실에 환자가 가득 들어차고도 평균적으로 항상 82명이 대기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2위인 전북대병원(140.1%)과의 격차도 컸다.
 

▼ 가슴 통증 환자 오자… 흉부외과와 협진 곧바로 수술 들어가 ▼

인턴이 먼저 진료한 뒤 전공의에게, 다시 교수에게 보고해야 하는 절차 탓에 그러잖아도 몰려드는 응급환자가 수술이나 입원 등 실질 조치를 받기까지의 시간이 평균 20시간, 길게는 3일까지 걸렸던 것이다.

실제로 응급실 전담교수 진료시스템 시행 직전인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을 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응급실 병상이 꽉 차 20여 명의 환자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빈 병상이 있어야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4시 심한 어지럼증으로 온 최모 씨(76)는 30여 분을 기다린 뒤에야 응급실로 들어왔다. 이어 먼저 인턴이 10여 분간 진료한 뒤 뇌 부위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고 응급의학과 전공의에게 보고했다. 전공의는 내려와 20여 분 동안 최 씨를 진료한 뒤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와 뇌척수액 검사를 계획했다. 6시간이나 기다린 뒤 나온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그런데 응급실 경과 관찰 중 발열이 확인됐다. 전공의는 이러한 상황을 담당 교수에게 보고하는 과정을 거쳤다. 최 씨는 결국 소변검사에서 세균 감염 의심 소견이 나와 최종적으로 패혈증으로 진단돼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진료와 검사 및 입원까지 걸린 시간은 총 12시간이었다.

최 씨 보호자는 “3명의 의사가 차례로 와서 같은 질문을 또 하고 해서 솔직히 불안하기도 했고 짜증도 조금 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응급의학과 김도균 교수는 “최 씨의 경우 경험 있는 교수가 바로 진료했더라면 초반부터 폭넓은 감별진단을 제시한 뒤 관련된 검사 등을 통해 진료 시간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팀 진료 덕에 특히 뇌혈관 및 흉통 환자 진료 시간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4일 응급실을 찾은 흉통 환자 오모 씨(52)의 경우 응급의학과 교수가 초음파 검사로 대동맥 박리를 의심해 흉부외과에 연락해 바로 정밀 검사를 요청했고, 혈압 조절 시술로 증상 악화를 막으며 과거보다 적어도 2시간 빠르게 수술에 돌입할 수 있었다.

병원 측은 이번 응급실 전담교수제 도입을 계기로 과밀도지수를 100% 미만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문의가 직접 진료하는 비율은 현재 35%에서 올해 말까지 50%, 내년엔 7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응급의학과 신상도 교수는 “응급실 전담교수 진료시스템이 진료 시간을 단축시키고 실제 환자의 생존율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은 “교육기관병원으로는 국내 처음으로 도입한 응급실 진료교수 제도인 만큼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엄격한 평가를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며 “특히 응급실에 골절 등의 환자가 많이 찾는 만큼 응급의학전문의 인력 추가 확충뿐만 아니라 정형외과 인력도 보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진한 의학전문 기자·의사 likeday@donga.com·조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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