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 10년만에 첫 두려움”… 현금 준비하는 외국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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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긴장 고조]국내 거주 외국인들 불안감 확산

“항공기 안전에는 영향 없을까” 10일 북한이 괌 주변 30∼40km 해상에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켓을 
발사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항공업계 또한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 종합통제센터 직원들이 인근 
노선 항공기의 항로를 체크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항공기 안전에는 영향 없을까” 10일 북한이 괌 주변 30∼40km 해상에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켓을 발사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항공업계 또한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 종합통제센터 직원들이 인근 노선 항공기의 항로를 체크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0일 오후 2시경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의 한 은행 앞. 금발의 한 젊은 외국인 여성이 불안한 표정으로 은행 문을 열고 나왔다. 손에는 하얀 봉투가 있었다. “아침에 북한 뉴스를 봤다. 혹시 몰라 일단 현금을 조금 갖고 있으려 한다”고 말한 뒤 급히 자리를 떴다.

북한과 미국의 발언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자 그동안 여러 차례 긴장 상황을 경험했던 국내 거주 외국인 사이에서도 “과거와 다른 것 같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이 타격 위치로 괌을 특정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는 것에 주목했다.


한 로펌 소속 변호사인 영국 출신의 마크 벤턴 씨(45)는 10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에서 생활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북한의 위협도 위협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두려움의 이유로 꼽았다. 벤턴 씨는 “서울의 안보가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외교 정책에 좌지우지된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달 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예상을 뛰어넘는 북한의 공격 무기 개발 속도도 걱정거리다. 경기 의정부시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는 개브리얼 조 씨(29·여)는 최근 미국에 있는 부모님과의 통화가 잦아졌다. 조 씨는 “아버지가 전화할 때마다 ‘시카고까지 오는 미사일을 북한이 가졌다는 게 정말이냐’고 묻는다”며 “온 가족이 다 내 걱정만 하고 있어서 나도 불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일부 외국인은 평소와 다름없는 한국인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북한 도발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 컨설팅사에서 일하는 대만 출신 리산위안 씨(33)는 “한국 사람들은 반세기 동안 이런 위협 속에서 살았으니 별 반응이 없는 게 이해가 된다”면서도 “하지만 이번 상황은 훨씬 심각해 보이는데도 별로 불안한 모습이 없어 놀라울 정도”라고 말했다. 캐나다인 앨릭스 리 씨(46·여)는 “‘마초’ 트럼프와 미친 김정은이 대결하는 지금 상황은 과거와 분명 다르다”면서 “캐나다였다면 평화를 요구하는 집회라도 열릴 텐데 한국은 너무 조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 의식에서 이유를 찾는 외국인도 있었다. 프랑스 여행객 레날드 씨(34)는 “프랑스도 반복되는 테러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평소에는 아주 평온하다”며 “한국은 대비가 잘돼 있어 쉽게 동요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이 같은 반응에 시민들은 “그럼 라면 사재기라도 해야 하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일상에 충실하고 정부는 안보에 충실하면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직장인 정모 씨(33)는 “물론 ‘북한이 설마 우리한테 핵을 쏠까’라는 안이한 생각을 해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사회가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한다면 더 이상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만 북한이 ‘괌’을 미사일 대상으로 특정하자 괌 여행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시민도 있었다. 이날 오전 회원 36만 명의 괌 자유여행 온라인 카페에는 관련 글이 수십 개 올랐다. 22일 출발 예정인 김모 씨(45·여)는 “500만 원어치 예약을 했는데 위약금을 200만 원이나 내야 한다고 해서 일단 눈치를 보고 있다”고 했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위약금 부담이 작은 9월 이후 예약 고객은 취소한 경우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권기범 kaki@donga.com·구특교·김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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