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 “日 군사문헌 연구 통해 한국학 영역 확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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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문헌학’ 펴낸 전쟁사학자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교수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교수는 “19, 20세기 서구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 살아남은 국가는 에티오피아, 태국, 일본 등 군사 집단이 국가 내에서 우위를 차지했거나 지역 강국의 수준에 도달한 국가였다”며 “중국 역시 청나라의 군사력이 신해혁명 이후에도 소멸되지 않아 주권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교수는 “19, 20세기 서구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 살아남은 국가는 에티오피아, 태국, 일본 등 군사 집단이 국가 내에서 우위를 차지했거나 지역 강국의 수준에 도달한 국가였다”며 “중국 역시 청나라의 군사력이 신해혁명 이후에도 소멸되지 않아 주권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미중 사이의 지역 내 긴장이 고조되고 있지만, 한국이 전쟁의 당사자가 될 소지가 없지 않다는 걸 실감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신간 ‘전쟁의 문헌학’(열린책들·사진)을 낸 전쟁사학자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교수(42)를 최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우리는 여전히 청나라가 동중국해 일대에 가져다준 ‘200년 평화’의 기억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북으로는 여진족, 남으로는 왜구를 막는 게 조선의 기본적인 군사전략입니다. 그러나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하고 일본과의 관계도 정상화되면서 두 가지 외침을 방비하는 게 정책에서 빠져 버립니다. 그 시기 만들어진 기억이 지금까지도 한국의 전통인 것처럼 내려오는 것이지요.”

우리는 6·25전쟁을 겪지 않았던가. “그 경험은 국제 정세에 대한 관심보다 ‘북괴’에 대한 증오, 즉 한반도 안의 인식에 머물렀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정책을 펴고 중국과 수교할 때 국내에서 반대가 별로 없었던 것도 그 방증입니다.”

‘전쟁의 문헌학’의 부제는 ‘15∼20세기 동중국해 연안 지역의 국제 전쟁과 문헌의 형성·유통 과정 연구’다. 조선 후기에 유통된 일본의 군사, 병학(兵學) 정보를 총정리했다. 일본에서 쓰인 ‘격조선론’ ‘본조무림전’ 등이 실학자 이덕무를 비롯해 조선 후기 지식인들 사이에서 꽤 널리 읽혔다는 것도 밝혀냈다. 김 교수는 “전쟁은 텍스트의 생산과 유통을 추동했다”며 “여전히 한국과 중국 중심인 한국학의 영역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드 논란을 묻자 김 교수는 “사드가 미사일을 다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제 한국은 약소국도 아니고 동맹이 원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할 리 없다는 건 ‘한반도는 소중하다’는 유아적인 발상일 뿐입니다. 북한도 중국에 대해 그런 착각을 하고 있지요.” 사드 보복에 관해서는 “일본은 이미 겪은 일”이라고 했다. 수만 명의 중국인이 반일 시위를 벌이며 베이징의 일본 상점을 때려 부수는 등의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일본은 자원 수입처와 시장 다변화 등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고려대 일문학과 출신인 김 교수는 임진왜란의 군담소설을 연구하다가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이 일본에서 널리 읽혔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전쟁사로 방향을 틀었다. 일본의 국립 문헌학 연구소인 국문학 연구자료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메이지유신 이전 일본에서 만들어진 모든 책을 수집한다’는 게 목표인 이 연구소에서 2006∼2010년 마이크로필름을 1만 점가량 읽고 검토했다고 한다. 그가 일본에서 낸 첫 책인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2010년)로 30년 전통의 ‘일본 고전 문학 학술상’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받았다.

“평화를 지향하지 않고, 분쟁을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있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전쟁은 인간 행동의 근본적인 측면이고 미연에 방지하려면 잘 알아야 하지요. 그러나 한국에서는 전쟁사가 특수한 분야처럼 인식돼 있습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김시덕#전쟁의 문헌학#625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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