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승자 규정 없어 아무나 타도 돼… ‘세림이법’ 구멍 숭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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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 시즌2]<3> 청주시 학원가 단속현장 가보니

《 26일은 김세림 양의 4주기다. 세림 양은 2013년 3월 충북 청주시에서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치여 숨졌다. 그 희생을 계기로 통학차량의 안전운행 규정이 강화됐다. 세림이법이다. 소규모 통학차량에 대한 유예기간이 끝나고 올 1월부터 전면 시행되고 있다. 새 학기를 맞은 어린이들의 통학길을 점검했다. 》

경찰이 충북 청주시의 한 도로에서 통학차량의 안전운행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통학차량 안전규정을 강화한 세림이법이 올 1월부터 
전면 시행 중이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청주=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경찰이 충북 청주시의 한 도로에서 통학차량의 안전운행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통학차량 안전규정을 강화한 세림이법이 올 1월부터 전면 시행 중이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청주=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8일 충북 청주시의 어느 학원가. 왕복 4차로 사거리를 중심으로 유치원과 어린이집 어학원 보습학원 태권도장 등 각종 교육시설 100여 곳이 몰려 있는 곳이다. 45인승, 25인승, 12인승, 9인승 등 크고 작은 통학차량이 쉴 새 없이 오간다. 어린이가 많이 다니기 때문에 경찰은 2015년 이곳의 차량 속도를 시속 30km로 제한했다.

○ 무시당하는 세림이법


이날 오후 3시 30분 통학차량 단속을 위해 충북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4명이 현장에 출동했다. 잠시 뒤 노란색 12인승 승합차 한 대가 정차하더니 어린이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 2학년생이다. 운전석과 뒷좌석에는 각각 40대와 30대 여성이 앉아 있었다. 어린이 하차를 돕는 사람은 운전석에 있던 40대 여성이었다. 경찰이 다가와 승하차 표시등과 통학차량 등록증 등을 묻자 여성은 “우리는 법규를 잘 지킨다”고 당당히 말했다.

정작 뒷좌석 동승자인 30대 여성은 이때도 앉은 채 멀뚱멀뚱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원에서 일하느냐?”고 경찰이 물었지만 여성은 대답조차 못했다. 불안한 듯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면서도 자리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정상적으로 안전한 승하차를 안내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경찰은 해당 통학차량을 그대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세림이법 위반 사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인 동승자가 있고 성인 보호자가 어린이 승하차를 도왔기 때문이다. 단속 경찰관은 “세림이법에는 동승자 자격 관련 규정이 없다. 차량에 어른이 타기만 하면 누가 탑승하든 상관이 없게 돼 있다”고 말했다.

세림이법 주요 내용은 어린이 승하차 관리를 위한 보호자 동승, 9명 이상 탑승하는 통학차량의 경찰 신고, 어린이 안전띠 착용 확인 등의 의무화다. 위반 시 학원 운영자에게 범칙금 13만 원과 벌점 30점(승합차 기준)이 부과된다.

약 10분 후 경찰이 어린이 6명을 태운 노란색 통학차량 1대를 세웠다. 짙은 틴팅(선팅) 탓에 차량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잠시 통학차량 안전 점검을 실시하겠습니다”라고 정중히 말하자 “우리 차는 다 지키고 있는데…”라는 퉁명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차량 뒷좌석에는 성인 동승자가 보이지 않았다. 차적 조회 결과 통학차량 등록 명단에도 없었다. 세림이법 위반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경찰은 통학차량을 그대로 돌려보냈다. “그래도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타고 내렸는지 직접 점검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계도만 했다. 세림이법 대상이 아닌 합기도장 차량이기 때문이다. 세림이법 적용을 받는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합기도장이 빠져 있어 통학차량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체육시설 차량에서는 어린이들이 안전띠를 매지 않아도 위법이 아니다. 현재 일반도로에서는 뒷좌석 탑승자의 안전띠 착용이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이 세림이법 대상을 모든 체육시설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

학원보다 규모가 작은 ‘교습소’도 세림이법의 사각지대다. 학원과 같은 사교육 시설이지만 세림이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한 학부모는 “주변에서 세림이법 도입 후 수강생 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학원에서 교습소로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 빈 틈 없애야 법 취지 살린다


단속 시작 후 약 1시간. 갑자기 근처를 오가던 통학차량이 눈에서 사라졌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불시 단속에 나서면 얼마 안 돼 학원가에 순식간에 전파된다”고 설명했다. 음주운전 단속 때 현장 정보가 온라인에 뜨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이 때문에 경찰도 한곳에서 오래 단속하지 못한다.

현장에서 만난 학원 관계자들도 “할 말이 많다”는 의견이다. 태권도장 차량을 운전하던 한 사범은 “관장과 둘이서 운영하는데 세림이법 시행 후 관장의 아내가 동승자로 타고 있다. 하지만 관장 집에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걱정이다. 동승만 하려고 1명을 더 고용하는 건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림이법을 향한 학부모들의 기대는 크다. 이현애 씨(35·여)는 “요즘 엄마들 얘기 들어 보면 세림이법 시행 후 학원들이 조심하는 게 많이 보여 다행이다. 하지만 엄마 마음에서는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날지 모르니 항상 걱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단속에 나선 한 경찰관은 “모든 법이 다 그렇듯 세림이법도 아직 자리를 완전히 잡지 못했고 반발도 있다”며 “하지만 꼭 필요한 법이기에 보완할 점을 고쳐 가면 조만간 어린이 안전을 위해 없어선 안 될 법으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청주=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 공동기획: 국민안전처 국토교통부 경찰청 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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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법#교통사고#통학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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