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휘돈 바람에 ‘팔상전’ 추녀끝 풍경소리… 속세 번뇌 훌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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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산사를 가다]
<4>국보-보물 15점 간직 보은 법주사

사찰에 들어서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이 반긴다. 전남 화순군 쌍봉사 3층 목탑이 1988년 화재로 소실되면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우리나라 전통 목탑이다. 이날 동행한 정병삼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전통 탑은 화강암이 풍부한 특성 때문에 대부분 석탑이라는 점에서 팔상전은 매우 희귀한 문화유산이다”라고 설명했다. 5층인 팔상전 추녀 끝에는 물고기 모양의 풍경(종)이 달려 있다. 바람에 맞춰 화음을 내는 풍경소리가 그윽하다.

팔상전 내부에는 잉태부터 출가, 해탈 등 석가모니의 생애 중요 장면을 8개 그림으로 묘사한 팔상도가 있다. 팔상전에서 서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높이 33m의 금동미륵대불을 만날 수 있다. 금빛의 화려한 모습이지만 굴곡진 역사가 담겨 있다. 애초 금동미륵불상이 신라부터 조선 후기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 불상을 징발하면서 사라졌다. 이후 1950년대 시멘트로 불상을 만들었고, 1990년대 다시 청동불로 세운 것을 2002년 순금으로 덧씌우면서 현재의 모습이 됐다.

법주사는 속리산 기슭에 있지만 평탄한 지형을 가지고 있어 넓은 마당에 다양한 문화재가 가득하다. 3일 대웅보전(보물 제915호)에서 바라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가운데 아래)과 팔상전(국보 제55호·가운데 위쪽), 금동미륵대불(오른쪽). 보은=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법주사는 속리산 기슭에 있지만 평탄한 지형을 가지고 있어 넓은 마당에 다양한 문화재가 가득하다. 3일 대웅보전(보물 제915호)에서 바라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가운데 아래)과 팔상전(국보 제55호·가운데 위쪽), 금동미륵대불(오른쪽). 보은=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법주사에는 금동미륵대불처럼 웅장한 규모의 조형·건축물이 많다. 사찰로 들어서기 위해 거쳐야 하는 사천왕문은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대웅보전(보물 제915호)은 높이가 20m에 이른다.

이런 모습은 임진왜란의 상처에서 비롯됐다. 원래 법주사는 조선 중기까지 왕실의 지원 등을 받아 60여 동의 건물을 갖출 정도로 번성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대부분 건물이 사라지는 등 황폐해졌다. 전쟁이 끝난 후 당시 조선 불교를 이끌던 벽암 각성 스님(1575∼1660)의 주도하에 법주사는 전후 사찰 중건의 시범 사례가 됐다. 그 덕분에 각종 지원과 우수 인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돼 현재 국보 3점을 비롯해 보물 12점 등 각종 문화유산이 가득한 산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법주사 입구에 있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 보은=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법주사 입구에 있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 보은=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아름다운 공예 작품도 가득하다. 대웅보전 앞에 자리한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은 사자 두 마리가 마주 서서 뒷발로 석등을 떠받치고 있는 등 독특한 조형미를 자랑한다. 법주사 서편의 마애여래의좌상(보물 제216호)을 빼놓으면 아쉽다. 암벽에 조각돼 있는 불상으로, 두툼한 입술과 반듯한 어깨 등 정갈한 형태로 부처가 연꽃에 앉아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 좌상 옆에는 법주사 창건 설화의 주인공인 의신조사가 불경을 실어오는 모습 등을 그려 넣은 조그마한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속리산 기슭에 위치한 법주사 일대는 1970년대까지 인기 있는 신혼 여행지 중 하나였다. 지금도 법주사 초입에는 수십 년 전통을 가진 식당들이 가득하다. 이달부터는 법주사와 대청호반에 있는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를 함께 방문하면 입장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대청호반에서부터 법주사까지 이어지는 약 50km의 드라이브 코스도 아름답다.

보은=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법주사#속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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