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상준]日은 인구 줄어도 취업자 증가… 한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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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인구가 줄어 실업률 떨어졌다?
기업 실적 좋아져 일자리 늘었기 때문, 불황기에 해둔 해외투자도 효과 톡톡
한국 청년실업, 인구 감소로 해결 못해… 양질의 일자리 늘려야 해결될 문제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한국에 있다 보면 일본은 인구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실업률이 떨어진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특히 청년 인구의 감소로 청년 노동자가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청년 인구가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청년실업 문제는 머지않아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청년실업이 가장 심각했던 것은 청년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후 한참 뒤의 일이다. 당시 청년 인구가 줄고 있는데도 청년 실업자가 는 것은 일자리가 줄었기 때문이다. 최근 구인난은 일자리가 늘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2013년부터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취업자 수는 오히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인구가 주는 나라에서 취업자가 느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일자리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자리가 늘어난 것은 일본 기업의 실적이 회복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자본금 10억 엔 이상 일본 제조기업의 경우, 2009년 1.9%였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2013∼2016년에는 5% 수준까지 올라갔다. 세계 경제의 회복과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의 공격적 통화정책에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일본 기업은 불황기에도 꾸준히 성장하였고 진화를 멈추지 않았다.

20여 년에 걸친 불황기에 많은 일본 기업이 시장에서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기업들은 더욱 강한 생존과 진화 능력을 갖게 됐다. 국내 수요의 부진과 엔화 강세는 기업들로 하여금 해외로 진출하게 했고, 이들은 품질 향상과 해외시장 개척에 승부수를 걸었다. 이제 일본은 무역수지가 적자가 되더라도 경상수지가 흑자인 나라가 되었다. 외국에 투자한 자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이 수출·수입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3조7000억 달러에 이르는 거대한 해외 자산이 있는데 중국과 독일의 해외 자산을 합친 액수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에 이른다. 그 거대한 해외 자산에서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4% 정도에 해당하는 소득이 발생하고 있다. 샤프와 도시바는 외국에 팔리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지만 소니와 히타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것이 바로 취업시장 호황의 이면에 있는 일본 경제의 현재 모습이다.

한국의 청년실업 역시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제공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야 해결될 문제이다. 그래서 최근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기업 총수와 만난 것이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처럼 가혹한 취업 빙하기에 기업의 성장을 위해 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얘기가 있다면 언제라도 소통의 창구를 열어 두는 것이 필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위 관료나 영향력 있는 정치가가 기업 총수를 만나는 것에 불편함과 분노를 느끼는 이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한국에는 기업을 응원하고 싶어도 응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기업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총수 집안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일반인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변칙 증여와 상속이 드물지 않게 있었다. 지금의 문명사회는 사유재산을 보호하고 증여와 상속의 권리를 인정한다. 그것이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에 필요하다는 것을 역사의 경험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에 공개된 기업의 경영은 상속의 대상이 아니다. 경영은 그 회사를 가장 잘 이끌 수 있는 능력자에게 맡겨져야 한다.

종업원들을 언제라도 쓰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처럼 여기는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최근 일부 대기업 회장 일가의 갑질 사건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한국의 대기업이 종업원들을 얼마나 정당하게 대우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일본과 한국 대기업의 데이터를 보면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에서는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에 뒤지지 않지만 매출액 대비 인건비는 한 번도 일본 기업보다 높은 적이 없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살고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가 주어진다. 기업을 응원하고 싶고, 정치인과 관료에게 기업의 소리를 소중히 여기라고 말하고 싶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문화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배려하는 기업으로 진화해 간다면 국민도 기업을 위한 정책과 수고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취업률#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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