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하준경]혁신 성장, 그 만만치 않은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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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언급한 혁신성장은 자본보다 기술-지식 중심
기득권자의 반칙 막아 혁신자의 시장진입 보장하고 실패를 자산으로 만드는 사회 분위기 필요
혁신성장과 소득주도 성장은 선순환 가능성 있지만 단기성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대통령이 소득주도 성장 못지않게 혁신 성장이 중요하다고 하자 여러 해석이 나왔다. 정부는 ‘소득’과 ‘혁신’이 수요·공급의 양 측면을 이끌어 준다고 하는 반면에 이 두 개념은 양립 불가하니 소득주도는 버리고 혁신으로 갈아타자는 이들도 있다.

개념이 혼란스러울 땐 반대 개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도움이 된다. 객관적으로 볼 때 소득주도 성장은 여러 해 지속된 부채주도 성장의 반작용이다. 세계적으로 경제 양극화가 심화돼 돈이 한쪽으로 몰리자 몰린 돈을 가계로 재순환(recycle)시켜 경제 전반의 수요를 유지하는 것이 과제가 됐는데, 이를 대출로 해결하자는 것이 바로 부채주도 성장이다. 이 방식은 빚으로 쉽게 수요를 창출하지만 금융 건전성을 낮추고 자산 거품을 일으키며, 원리금 부담이 너무 커지면 수요가 오히려 주는 부작용이 있다.

부채주도 성장은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를 낳았고, 이제 가계가 빚보다는 실질 가처분소득으로 수요를 창출하게 하는 것이 관건이 됐다. 이런 반성 속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중심으로 포용적 성장이 화두로 떠올랐다. 모든 이에게 고른 성장 기회를 주고 성장의 과실도 공평하게 누리자는 것이다. 물론 지난한 작업이다. 한국의 소득주도 성장도 부채주도 성장의 극복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최적의 대안을 찾아가는 계기로 작용할 때 의미가 있다.

그럼 혁신 성장은 어떻게 봐야 하나. 경제성장론에서 혁신주도 성장의 대립 개념은 투입주도 성장이다. 개발도상국은 성장 초기엔 자본 투입을 중시하지만 선진국에 다가갈수록 기술 혁신을 중시해야 지속 성장을 할 수 있다. 한국에 딱 들어맞는 명제다. 투입주도 전략에서는 기계 건물 등 물적 자본이 핵심이고, 기술은 모방한다. 반대로 혁신주도 전략에서는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고, 자본은 기술을 따라온다.

자본과 기술은 속성이 판이하다. 기계-자본은 내가 쓰고 있으면 남이 쓸 수 없는 사적 자산이다. 그러나 지식-기술은 내가 쓰든 말든 그 내용이 알려지는 순간 많은 이들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잠재적 공공재다. 그래서 혁신 성장에선 정부가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특허로 기술에 소유권을 부여해 사용료를 받게 해주고, 그것이 곤란한 기초연구에는 직접 투자한다. 각종 지원제도로 혁신의 수익률을 높여줘 과소투자를 막는다. 선진국에선 새 혁신자의 시장 진입, 성장, 수익 회수 등 전 과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기득권자의 반칙을 막아 창조적 파괴를 원활히 하는 일도 한다. 나아가 자발적 학습 네트워크, 평판을 활용한 투자위험 관리, 실패를 자산으로 만드는 사회 분위기도 필수다. 혁신 생태계는 이렇게 겹겹이 쌓인 유형, 무형의 인프라 위에 민간의 돈이 흘러들 때 활성화된다. 이 또한 만만치 않은 길이다.

소득주도 성장이나 혁신 성장은 모두 한국의 시대적 과제들을 반영한다. 그러면 이 둘은 양립 가능한가. 기존 성장전략에 답이 있다. 최근 몇 년 한국의 성장전략은 부채주도 성장과 투입주도 성장이 양 날개로 결합된 ‘빚내서 집 사라’ 전략이었다. 다양한 금융·조세·제도적 지원책들이 ‘빚’과 ‘집’의 연결고리가 됐다. 자발적 집 공부 네트워크, 분양권을 현금화하는 서비스들, 선분양을 통한 투자자와 건설사의 위험 공유, 고가 주택은 환영하고 임대주택은 막아내는 지역주민의 실천, 정부도 결국 한배를 타고 있다는 믿음 등이 세계 수준의 집 투자 인프라를 구축했다. 부채가 투입을 유발하고, 투입이 부채를 끌어올리는 유기적 구조다. ‘소득’과 ‘혁신’도 이렇게 상호 보완의 연결고리를 갖추면 같이 갈 수 있다.

혁신은 본래 빚 주도 성장과는 좋은 조합이 아니다. 사람들이 매달 원리금을 갚는 데 급급하면 위험한 혁신보다 안정적 현금 흐름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가계소득이 사회안전망으로 뒷받침되면 위험을 무릅쓰고 혁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저임금이 적정 속도로 오르면 출혈경쟁보다 혁신을 유도할 수 있고, 인적자본 투자는 잠재적 혁신자를 키운다. 또 혁신이 활발해지면 세수가 늘고 양질의 사업서비스 일자리가 생겨나 소득 기반도 나아진다.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소득’과 ‘혁신’이 선순환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새 성장전략을 시도하다가 단기 성과 때문에 익숙한 낡은 전략으로 되돌아가는 장면들은 이제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혁신 성장#부채주도 성장#투입주도 성장#소득#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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