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치영]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게 맞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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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경제부장
신치영 경제부장
문재인 대통령은 기업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있을까. 경제를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함께 손잡고 가야 할 파트너인가, 개혁의 칼을 대야 하는 적폐의 잔재인가.

요즘 기업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이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으면 기업들은 투자도, 신사업 진출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동연 경제부총리,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이 질문을 똑같이 던졌다.

“대통령은 기업 친화적인 분이다.”(김 부총리)

“대통령이 대기업에 대해 반감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다.”(백 장관)

“대통령은 대기업이 혁신성장의 중요한 축이라고 생각한다.”(김 위원장)

세 사람 모두 확신에 찬 듯 자신 있게 말했다. 문 대통령이 대기업을 국정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얘기를 듣다 보면 과연 이들의 말이 맞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새해 첫 기자회견에서 재벌개혁 얘기를 했을 때도 그랬다. 문 대통령은 “재벌개혁은 경제성과를 중소기업과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역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재벌개혁 과제만 쏟아낸 대통령의 말에 기업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난달 22일 규제혁신 토론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신기술을 위해 ‘혁명적인’ 규제혁신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진보 진영 일각에서 ‘재벌특혜’로 공격하는 수도권 규제 완화, 서비스업 활성화, 규제 프리존 등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청년일자리 점검회의 역시 대기업에 대한 대통령 인식의 단면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여전히 ‘일자리는 민간이 만드는 것이다’란 고정관념이 지금 정부 각 부처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질책했다. 민간에만 맡기지 말고 공공 부문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을 수도 있지만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의 주체인 기업에 손을 내밀기보다는 공공부문이 앞장서서 일자리를 만들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정부 출범 직후 11조 원의 추경으로 약 1만 명의 공무원을 추가로 뽑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악의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가 공무원을 더 뽑고, 중소기업에 고용보조금을 주는 방법은 일자리를 늘리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일자리는 결국 민간 기업이 투자를 하고 직원을 뽑아 공장을 돌릴 때 생겨난다. 일자리를 만드는 대기업의 역할을 백안시한다면 청년일자리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지난달 말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토론회에서 “일자리는 민간에서 창출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김 부총리의 발언이 나는 옳다고 본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장관들의 합동브리핑, 100페이지의 보도자료보다 훨씬 더 주목을 받는다. 대통령은 모든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문 대통령이 기업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보다 명확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던져주기를 원한다.

지난주 문 대통령이 참석한 공식 행사에 이목이 쏠린 것도 이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1일 일자리 나누기 모범 기업인 한화큐셀을 방문한 데 이어 다음 날에는 현대자동차의 자율주행 수소차를 시승한 뒤 현대차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재계는 문 대통령의 이번 행보가 대기업 기 살리기의 신호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아직도 대기업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 실용주의를 받아들이기를 권하고 싶다. 일감 몰아주기나 편법 증여 같은 불법 행위는 엄단해야 하겠지만 기업을 국정의 파트너로 삼아야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신치영 경제부장 higgledy@donga.com
#문재인 대통령#김동연 경제부총리#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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