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광현]‘보이는 손’이 너무 설치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봄, 보유세 인상이 막 거론되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당시 재정경제부 세제실의 한 간부가 “세금 올리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라며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부가가치세 도입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게 세제실 사람들”이라고 했다.

보유세, 집값잡는 수단 전락

1977년 정부가 부가가치세를 도입하자 자영업자, 상인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당시 전국에서 자영업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 부산과 마산이었다. 학생들만 하던 반정부 시위에 시민들이 가담하기 시작했고 민심 이반의 현장을 목격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총을 빼들었다는 설명이었다.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세금 올리는 데는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그런 세제실을 관장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청와대와 여당에 등 떠밀려 보유세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여러 매체와 가진 인터뷰를 보면 보유세 인상 자체는 기정사실이고 적용 대상, 인상 폭과 시기를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 같다. 세금이라고 절대 불변이란 법은 없다. 쓰임새가 생기고, 과세형평을 위해서라면 조정할 수 있다. 문제는 보유세 인상이 분양가 상한제처럼 강남 집값 잡는 통제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집값 잡으려고 세금을 동원하는 것은 물량 수급 조절이나 금융 정책에 비하면 하지하(下之下) 대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엊그제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규제를 혁명적으로 혁파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단 허가를 해주고 사후에 관리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모두 옳은 지적이고 제대로 된 방향이다. 하지만 개별 인허가 규제의 폐해는 정부가 직접 물건값을 매기는 가격 규제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보이지 않는 손’ 대신 정부의 ‘보이는 손’이 너무 자주 등장하고 손놀림이 거칠다. 최저임금뿐만 아니라 카드사업자 팔을 비틀어 강제로 수수료를 낮추게 하는 것도 가격통제다. 비정규직을 강제로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임금에 대한 규제다.

내일부터 실시되는 상가 임대료 인상률 인하 조치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인상률 상한을 현행 9%에서 5%로 뚝 떨어뜨리면 당장은 세 들어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이 좋아할 수 있다. 길게 보면 스토리가 달라진다. 돈 안 되는 상가임대업을 하겠다는 사업자가 줄어들 게 뻔하다. 임대로 나온 가게가 드물게 되면 결국 일부 상인들은 가게를 못 구하거나 상한선보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들어가야 한다. 공상소설이 아니다. 경제학 교과서는 “폭격 외에 도시를 가장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이 임대료 규제”라고 가르치고 있다.

집값 빵값 임금까지 국가가 다 정했다가 망해버린 나라가 사회주의 소련,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이다.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에 들어 시장원리로 기울면서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해 이제는 미국과 어깨를 겨룰 만큼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베네수엘라는 이런 흐름에 역주행하다 나라 경제가 거덜 난 경우다.

가격통제가 가장 큰 규제

가진 자들이 좀 더 희생해서 약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자는 취지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취지가 좋다고 결과까지 좋은 것은 아니다. 많은 역사적 경험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정치적 구호가 사람중심 경제이고, 동원된 수단들은 대부분 가격통제 정책이다. 자칫하면 사람중심 경제가 사람 잡는 경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노무현#보유세 인상#부가가치세#김동연#문재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