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거실서 ‘꽈당’… 화장실서 ‘미끌’… 어르신엔 집도 위험지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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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3>노인 낙상사망 68%가 집안사고

노인들이 자주 넘어지는 장소가 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인 도로도, 잡풀이 우거진 논밭도 아니다. 6일 질병관리본부가 2010∼2016년 응급실 23곳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만 65세 이상 노인 낙상환자 7만8295명 중 54%인 4만2287명이 자신의 ‘집 안’에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출을 했다가 도처에 있는 장애물을 피해 간신히 귀가해도 또 다른 위험 공간이 펼쳐지는 셈이다. 노인들이 사는 집을 가장 안전한 장소로 만들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 낙상 막기 위한 22종 노인 친화 설계

지난달 28일 장을 보고 돌아온 이복순 할머니(79)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옆벽에 설치된 안전 손잡이에 기댔다. 신발을 벗다가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한 장치다. 현관 문턱 높이는 1.5cm가 되지 않아 발이 걸려 넘어질 가능성이 낮다. 이는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치된 것들이다. 이 할머니가 사는 경기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위례35단지 공공실버아파트에는 집집마다 이런 노인 친화 설비가 13∼22종 마련돼 있다.

노인 집 안 낙상 사고의 절반은 침실과 거실(50.4%)에서 일어난다. 갑자기 일어났다가 현기증으로 시야가 흐려지면서 장애물을 밟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 할머니의 거실엔 이를 막기 위해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바닥을 밝혀주는 ‘동작 감지 센서등(燈)’이 설치돼 있다. 이 할머니는 “예전에 다세대주택에 살 땐 밤중에 화장실에 가려면 벽을 더듬거리며 걸어야 했는데, 지금은 참 살 만하다”며 흡족해했다.

침실과 거실 다음으로 위험한 장소는 화장실이다. 변기에서 일어나거나 샤워를 하다가 바닥 물기에 미끄러지기 쉽다. 이 때문에 독일 등 선진국에선 호텔에 노인이 앉아서 씻을 수 있도록 샤워기 앞에 의자를 둔다. 이 할머니 아파트 화장실의 샤워기와 양변기 옆엔 손으로 짚을 수 있는 안전 손잡이가 있다. 바닥엔 미끄럽지 않도록 까끌까끌한 마감재를 사용했다. 세면대는 노인의 키에 맞춰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다.

새로 짓는 노인 공공임대 주택엔 이런 설비가 기본적으로 들어간다. 문제는 오래된 집들이다. 국토교통부는 내년부터 주거급여를 받는 저소득층 노인이 사는 집에 편의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가구당 50만 원씩 지원할 예정이다. 지금도 장기요양 등급이 있는 노인이라면 보건복지상담센터(129)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안전 손잡이나 미끄럼 방지 매트 구입비를 일부 지원받을 수 있다.

○ 골든타임 위한 이웃의 ‘선한 오지랖’

안전 설비가 있다고 모든 낙상 사고를 막을 순 없다. 특히 홀몸노인은 집 안에서 쓰러지면 발견이 늦어 심각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 2011∼2016년 노인 낙상 사망자 1150명 중 791명(68.8%)의 사고 발생 장소가 집이었다.

평소 이웃끼리 가까이 왕래하며 서로 관심을 가진다면 이런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실제 7월 위례35단지 아파트에선 평소와 달리 현관문을 꼭 닫고 점심식사를 하러 나오지 않는 A 씨(84)를 이상하게 여긴 이웃의 도움으로 A 씨가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 이웃 주민은 곧바로 사회복지사에게 “오늘따라 A 씨가 이상하다”고 전화했고, 복지사는 가족의 양해를 구한 뒤 바로 문을 따고 들어가 쓰러진 A 씨를 발견했다. 다행히 A 씨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 치료를 받고 회복할 수 있었다.

위례35단지가 ‘노노(老老) 이웃 케어’의 생태계를 갖추는 데는 지역 복지관의 역할이 컸다.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성남위례종합사회복지관은 이곳 노인들을 위해 낮에 물리치료실과 텃밭을 열고, 저녁에 홀몸노인들이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공용 주방을 개방한다. 이웃이 자주 만나도록 해 자연스럽게 서로 돌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이처럼 지역 복지관이 노인의 주거 안전에 적극 관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내년부터 노인 주택 가까이에 복지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을 벌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산 당국이 “복지관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어야 한다”며 반대해 예산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상태다. 김유진 경북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노인에게 집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주거공간에서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집과 복지관을 잘 연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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