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최근 20년간 독자들이 도서관서 가장 많이 대출한 도서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1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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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년 동안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한 도서는 8·15해방 뒤 이념갈등과 전쟁을 다룬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으로 나타났다.

이는 본보가 도서관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도서관 정보 나루’와 함께 1999년부터 올 8월까지 이뤄진 도서 대출 9억6600만 건을 분석한 결과다. ‘도서관 정보 나루’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예산 지원으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개발해 2016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도서관 이용자들은 소설을 특히 많이 빌렸다.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지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히가시노 게이고)을 비롯해 상위 1~6위가 모두 소설이다. 권정생(1937~2007)의 동화 ‘강아지똥’, 혜민 스님의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10위 안에 들었다. 서점가 베스트셀러가 신간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데 비해, 도서관 빅데이터는 꾸준히 읽히는 책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많이 빌려간 도서(초중고 참고서 제외) 목록 추이에서는 독자들의 ‘마음’이 얼핏 엿보인다. 4년 단위로 나눠 살펴보니 1999~2002년에는 빈부를 대비해 삶의 모순성을 그린 소설 ‘모순’(양귀자), 팔다리 없이 태어났지만 의지를 잃지 않았다는 에세이 ‘오체 불만족’(오토다케 히로타다), 췌장암에 걸린 아버지를 소재로 한 소설 ‘아버지’(김정현) 등이 각각 대출 순위 1~3위를 차지했다.

책 ‘베스트셀러 30년’을 펴냈던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위기 이후의 불경기와 직장에서 밀려난 가장 등 어두운 현실이 반영된 책,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책이 상위에 랭크됐다”고 해석했다.

2003~2006년에는 상상력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와 함께 ‘팩션’의 유행을 이끈 ‘다 빈치 코드’(댄 브라운)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가 1, 2위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대출도서 목록에도 여파를 남겼다. 2007~2014년에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신경숙)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 ‘힐링 자기계발서’로 등장한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등이 5위권 안에 들었다. 한 소장은 “2007년 등장한 ‘88만 원 세대’ 담론과 함께 큰 성공을 바라기보다 작은 행복이라도 유지하길 바라는 청년의 마음, 금융위기 이후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도 고독한 개인의 처지가 목록에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2015~2018년에는 ‘아들러 심리학’ 붐을 일으킨 ‘미움 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와 맨부커상을 받은 소설 ‘채식주의자’(한강) 등이 많이 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도서관 정보 나루’ 알고리즘이 추출한 20년간 대출 상위 1~100위 도서의 핵심 키워드로는 ‘사람’ ‘세계’ ‘시작’ ‘자신’ ‘사랑’ 등이 꼽혔다.

‘도서관 정보 나루’는 2018년 9월 현재 전국 도서관 845곳의 데이터를 수집한다. 공공도서관 1000여 곳 가운데 600여 곳이 포함돼 있다. 이 데이터는 도서관에 비치할 도서를 구매할 때 참고 자료로 사용하며, 이용자들에게 지역·성·연령별 인기 대출 도서를 알려주는데도 쓰인다. 김혜선 KISTI 책임연구원은 “참여 도서관을 확대하고 더욱 정확한 데이터를 모으는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민간 데이터와 연계해 분석하면 활용 분야가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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