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얼굴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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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이기호 지음/316쪽·1만3500원·문학동네

소설가 이기호는 인터넷 중고나라 사이트에서 헐값에 나온 자기 책을 발견한다. 심지어 더 높은 가격의 책 다섯 권을 사면 자기 책을 무료로 준단다. 코멘트는 이렇다. ‘이기호/병맛 소설, 갈수록 더 한심해지는, 꼴에 저자 사인본.’ 광주에 사는 그는 책을 내놓은 이가 누군지 확인하려 KTX를 타고 경기 고양시 일산까지 달려간다. 작가의 실제 경험일까.

재기발랄한 이야기꾼의 새 소설집은 늘 웃음기 가득했지만 진지한 얼굴로 돌아온 사람 같다. 용산 참사 때 현장에 가지 않았던 크레인 기사, 돈을 돌려받으려 아파트 앞에서 말없이 피켓을 들고 있는 게 전부지만 점점 사람들에게 원인 모를 분노를 느끼게 만드는 남자, 불륜 사실을 고백했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남편을 죽인 여성….

7개의 단편은 윤리와 수치, 모욕, 조건 없는 환대에 대해 차례로 질문을 던진다.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삶 속에서 당신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고. 묵직한 주제를 다루지만, 노련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솜씨는 단숨에 책을 읽어내게 만든다. 찌질한 속내가 드러나고, 한 편의 시트콤 같은 실랑이를 벌이는 풍경이 실감나게 펼쳐져 간혹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작가는 ‘이기호의 말’에서 다시 묻는다. 진실이 눈앞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뻔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냐고. 그리고 말한다. 자신은 아직 멀었다고. 고해성사 같은 이 문장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노라니 첫 페이지부터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듯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그의 말처럼 책과 소설은 인간에게 윤리와 수치를 가르칠 수 없는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흡입력 있는 이야기의 향연은 세상과 나, 타인을 적어도 한 번쯤은 돌아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 된 거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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