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교정 시금치로 만든 파스타, 식탁에 오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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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체교정생물체 놓고 찬반 논란
美-日 “GMO 규제 대상서 제외”, 유럽 “GMO 관련법 똑같이 준수”
“소비자 불안부터 먼저 해소해야”

20일 일본 환경성 전문가위원회는 ‘외부 유전물질이 남아 있지 않은 유전체교정생물체를 유전자변형생물체(GMO)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라’고 권고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로 대표되는 유전자 교정기술을 이용해 DNA 안에서 특정 부위만 잘라내거나 교체하는 유전체교정생물체는 생물체 고유의 DNA에 없던 유전자를 더해 만든 GMO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유럽 사법재판소는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유전체교정생물체도 GMO 관련 법을 똑같이 준수해야 한다”는 엇갈린 판단을 내렸다. 겨우 한 달 사이 정반대의 결론이 나온 셈이다.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유전체교정생물체를 어떻게 규제해야 할지를 놓고 세계 각국이 혼란에 빠졌다. 주인선 식품의약품안전처 신소재식품과 연구관은 “아직은 유전체교정생물체에 대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제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GMO는 2000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생물다양성보존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바이오안전성에 관한 카르타헤나 의정서’에 따라 국제적인 규제를 받고 있다. GMO의 개발과 생산, 수입·수출, 유통 등 전 과정에서 규제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국내 이행 법률인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은 GMO를 ‘현대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해 새롭게 조합된 유전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생물체’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기준으로 따지면 외래 유전물질이 들어가지 않은 유전체교정생물체는 GMO에 해당되지 않는다.

세계 각국은 유전체교정생물체를 GMO에 포함시킬지 여부와 규제 방향에 대한 잠정적인 결론을 속속 내놓고 있다. 세계 농산물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은 농업 분야에서 유전자 교정 기술 적용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올해 3월 소니 퍼듀 미 농무장관은 “농무부는 유전자 가위 같은 새로운 육종 기술로 만든 유전체교정식물을 GMO와 동일하게 규제할 계획은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2012년부터 현재까지 갈변 없는 버섯, 가뭄과 염분에 강한 대두 등 총 6종의 유전체교정식물이 미 농무부로부터 GMO 규제 대상 제외 판정을 받았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포괄적인 규제보다는 개별 제품을 대상으로 위해성 심사와 판매 허가 절차를 진행한 뒤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이스라엘 등이 취하고 있는 입장과 같다. FDA는 지난해 4월부터 3개월간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받은 시민 의견을 바탕으로 유전체교정생물체 관련 규제를 마련할 계획이다.

일본 환경성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법률적 검토 등을 거쳐 내년 3월까지 규제 방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유럽 사법재판소는 현재 GMO에 적용되고 있는 강력한 규제를 유전체교정생물체에도 적용해 소비자의 불안을 해소하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스웨덴 정부는 2015년 외래 유전물질이 없는 유전체교정생물체는 유럽연합(EU)이 규정하는 GMO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에 이듬해 스웨덴 우메오대 연구진은 유전체교정시금치로 파스타를 만들어 시식회를 열기도 했다.

인도는 유전체교정생물체를 GMO 규제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고 연방정부가 아닌 주 단위에서 관리하도록 했다. 반면 캐나다는 국내 법률의 적용 대상이 GMO에만 국한되지 않아 포괄적인 규제를 한다.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아직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도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주 연구관은 “유전자 가위 기술과 관련해 아직 결정된 게 없다.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보다 해외 동향을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계에 따르면 식약처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 관계 부처들은 이미 내부 검토를 통해 유전체교정생물체를 GMO 규제하에서 관리하기로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유전자 가위 기술은 전체 유전체의 10억분의 1을 바꿀 뿐이다. 자연적인 변이나 방사선 육종 기술을 적용했을 때와 동일한 수준”이라며 “유럽사법재판소의 결론은 비과학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유전체교정생물체에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면 과학자들이 먼저 시민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kyungeun@donga.com
#유전체교정생물체#찬반 논란#소비자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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