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승현]“대통령 할머니, 왜 숨어있어요? 잘못 다 말하면 되잖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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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촛불집회]집회 참가 어린이, 궁금증 표시… 당연한 대답 못하는 현실 참담

강승현·사회부
강승현·사회부
 “엄마, 대통령 할머니는 왜 꽁꽁 숨어 있어요? 그냥 솔직하게 다 말하면 안 돼요?”

 최순실 씨(60·구속)의 국정 농단을 비판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린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다섯 살 남짓 된 아이가 주변 어른들의 구호를 듣다가 말문을 열었다. 엄마는 아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듯 머뭇거리다가 “국민들에게 잘못해서 청와대에 숨어 계셔”라고 말했다. 아이는 엄마의 대답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잘못한 걸 다 말하고 미안하다고 하면 되잖아요?”

 이날 집회 현장에는 아이들과 함께 촛불을 든 가족 단위 참가자가 많았다. 고사리손으로 ‘박근혜 하야’라고 적힌 피켓을 든 아이들은 어리광을 부리다가 이따금 엄마 아빠가 외치는 구호와 노래를 따라 했다. 아이들의 입을 통해 나온 ‘하야(下野)’라는 단어가 광장 곳곳에 울려 퍼졌다. 이를 지켜보는 어른들은 신기해하면서도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과연 아이들은 하야의 뜻을 알까. 반신반의하며 피켓을 든 열한 살 꼬마에게 말을 건넸다. “하야는 잘못을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뜻이에요. 대통령 할머니는 민간인인 최순실 씨에게 연설문을 고치게 하고, 국가 중요 문서를 보여주는 큰 잘못을 하셨어요.”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망설임 없이 ‘대통령의 잘못’을 조목조목 말하는 아이의 모습에 기자는 뒤통수를 맞은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는 이어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것 같지만 우리도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엄마 아빠랑 같이 왔어요. 대통령 할머니께 말씀드리려고…”라며 기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했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대통령 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을 말하고 있다. 이제 막 한글을 깨치고 동요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 유치원생들이 ‘국정 농단’ ‘하야’ 같은 생경한 단어를 따라 하고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게임을 즐기던 초등학생도 “촛불집회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부모에게 묻고 있다.

  ‘잘못을 저지르면 솔직하게 말한 뒤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라’라고 배운 아이들은 지금 대통령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평소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쳤던 어른들의 마음도 답답하고 미안할 뿐이다. 박 대통령이 ‘모두의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대통령 할머니를 걱정하는 ‘아이들의 물음’에라도 진심으로 응답하면 좋겠다.

강승현·사회부 byhu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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