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지영]문학과 정치의 10년 주기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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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문화부 차장
김지영 문화부 차장
세대(世代)는 생물학적으로는 자녀가 자라서 부모의 일을 잇는 30년 단위의 연령층을 가리키지만, 한국문학에선 그 간격을 10년 안팎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공통의 체험을 기반으로 해서 공통의 의식이나 풍속을 전개하는 일정 폭의 연령층’이라는 사회학적 의미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10년 주기에 대해서는 1990년대 중반 평론가 김병익 씨가 1962, 63년생 작가군을 조명하면서 일찍이 짚었다. 당시 막 30대에 들어선 소설가 공지영 김소진 신경숙 윤대녕 장정일 씨 등이었다. 시인 유하 함민복 함성호 씨, 평론가 권성우 이광호 씨 등도 이들과 같은 연배다.

앞서 1951∼53년 태어난 문인들로 이성복 최승자 황지우 씨와 소설가 강석경 이인성 최윤 씨 등이 있고, 1941, 42년생으로는 시인 김광규 김지하 오규원 씨와 소설가 김승옥 김원일 이문구 씨, 평론가 김현 김주연 염무웅 씨 등의 문인들이 있다. 10여 년 간격으로 또래 작가들이 다수 출현한 셈이다.

한국문학의 ‘10년 주기설’은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1963년생 작가군 이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 씨를 비롯해 소설가 김연수 김중혁 이기호 정이현 편혜영 씨 등 1970∼72년생 작가들이 몰려 나왔다. 현재 문단에서 주목받는 30대 문인인 시인 박준 오은 씨, 소설가 김애란 손보미 정용준 정지돈 씨 등은 1980∼83년생이다.

그해가 특별히 주목받는 문인을 많이 내놓겠다고 작정하는 것도 아닐 테니, 10여 년 간격을 두고 문인들이 쏠리는 시기가 이어지는 현상은 흥미롭다. 이유가 뭘까. 앞서 김병익 씨는 한국 사회의 역사적 변화를 원인으로 추출했다. 각 작가군이 청년 시절에 맞닥뜨린 사건이 4·19혁명-개발독재-5·18민주화운동-옛 소련 붕괴로 인한 이념 체제의 종말이라는 것이다. 10년 단위로 한국 사회를 뒤흔든 이 굴곡들이 감수성이 예민했던 젊은 시기의 작가들에게 글쓰기의 뿌리로 자리 잡았음을 짐작할 만하다.

주목할 것은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문인들의 분석이다. 1983년생 소설가 정지돈 씨는 10년이라는 간격에 대해 “문학 선배들에게서 자유로워져 새로움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문학작품은 일정한 시기에 공유하는 사회적, 문화적 이슈의 충격 아래서 쓰이며 그 여진이 상당 기간 계속된다는 것, 앞선 시와 소설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갖는 데는 10년 정도가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예일대 교수인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도 저서 ‘영향에 대한 불안’에서 “시인의 상상력을 방해하는 장본인은 후배 시인이 독창성을 발휘할 권한을 선취한 선배 시인”이라고 밝혔을 만큼, 선배 작가가 후배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만만치 않다. 정지돈 씨와 동년배인 평론가 강동호 씨는 여기에 더해 “10년은 앞선 작가들과 차별성을 갖는 데, 또한 독자들이 앞선 작품들을 충분히 향유한 뒤 문학적 새로움을 요구하게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정권교체 10년 주기설’이 주목받았다.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정권까지 보수와 진보 진영이 10년 주기로 집권해서다. 강동호 씨의 분석을 변주하면 10년은 국민들이 정치적 새로움을 요구하는 데 걸린, 그 열망이 촛불집회로 표출되기까지의 시간이다. 앞선 진보 정권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문 대통령이 영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이 이 정치적 차별성과 새로움을 어떻게 보여줄지에 새 정부의 성패가 달렸다. 블룸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전통의 연속성이 아니라 불연속성, 앞선 이에 대한 모방을 넘어서서 그를 능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지영 문화부 차장 kimjy@donga.com
#한국문학#김병익#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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