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피터 풀데]한국 교육, 중고교 학업평가 혁신 없인 미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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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풀데 독일 막스플랑크복잡계연구소 명예소장
피터 풀데 독일 막스플랑크복잡계연구소 명예소장
필자는 2007년 포항공대 물리학과 석좌교수로서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소장을 지내면서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현재는 고향인 독일 드레스덴으로 돌아와 막스플랑크복잡계연구소를 설치하는 등 도시 재건과 혁신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대한민국이 단기간에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첨단 기술을 재빨리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추격자(follower)’ 전략 덕분이었다. 한국 기업은 해외 기술을 도입해 진일보시키면서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해 왔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한계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한국도 과학기술 혁신을 선도하는 ‘혁신가’의 나라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또 다른 추격자에게 따라잡히고 말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철저한 준비와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혁신은 기술 개발의 근간이 되는 새로운 지식을 세계 최초로 창출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지식의 창출과 진보를 위해서는 기초과학 연구에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최고를 지향하는 수월성 중심의 연구에 대한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혁신을 선도할 기초과학 지원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믿는다. 필자가 설립에 기여했고 현재 자문위원으로 있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의 눈부신 약진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초과학만큼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중고교 교육의 변화이다. 현재의 중고교에서는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자라고 있다. 중고교 교육이 추격자를 양성하는 교육이냐, 혁신가를 양성하는 것이냐 하는 지향성에 따라 한국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추격자는 전문 지식, 절제력, 성실성 등을 갖추는 것으로 성공할 수 있지만 혁신가에게는 이 외에도 상상력,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 등이 요구된다.

새로운 길에 도전하고 전인미답의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실수와 실패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혁신가에게 실패는 성공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또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은 수없이 겪게 될 인생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을 키워준다.

매우 아쉽게도 한국의 중고교는 아직 과거의 추격자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수법, 학습 방법, 평가 방법을 모두 혁신해야 한다. 특히 학생의 학업능력 평가제도는 반드시 손질해야 한다. 수업 중에 배운 내용의 암기 여부를 평가하는 현재의 평가제도는 추격자의 능력을 평가할 뿐이다.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이고 유연하며 독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평가 방법을 바꿔야 한다.

독일에서는 4년의 초등교육과정 이후 대학 진학을 위한 6년의 일반고와 전문 지식을 습득하는 8년의 특성화고로 나뉜다. 중고교생들은 정규과정 외에도 다양한 특별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특별활동은 예체능을 비롯하여 물리, 생물 같은 심화과정도 포함한다. 점수를 매겨 서열화하지 않고 학생들의 창의력과 사고력 향상에 주안점을 둔다. 이러한 교육은 소수의 상위권 학생만을 위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중고교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배운 것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 이미 알려진 사실을 단순 반복하여 암기시키는 것은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 학습 부담이 과도한 환경에선 뛰어난 혁신가가 나오기 어렵다. 오늘의 중고교생이 장차 한국의 미래 자산인 만큼 꿈나무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길러낼 수 있는 교육인지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발 빠르게 대처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피터 풀데 독일 막스플랑크복잡계연구소 명예소장
#중고교 교육#교육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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