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모피코트의 역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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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환 아시아하천복원네트워크 의장 대진대 교수
장석환 아시아하천복원네트워크 의장 대진대 교수
올해 겨울은 약한 라니냐의 영향인지 예년에 비해 일찍 찾아온 매서운 한파로 모두 몸을 움츠리고 있다. 반면 추위 덕에 따뜻한 겨울을 맞고 있는 곳도 있다. 유명 백화점들은 겨울 정기세일 매출이 작년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그 중심에 롱패딩 열풍이 있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서도 모든 학생들이 롱패딩을 입고 있어 뒤에서 보면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중고교생 사이에서도 롱패딩이 유행하면서 부모 등골을 휘게 한다는 일명 ‘등골브레이커’가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7, 8년 전 수십만 원에 이르는 특정 브랜드 점퍼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나온 말이다.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 유행에 민감한 자녀들이 요구하는 수십만 원대의 롱패딩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을 겪는 모습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보고 있다.

방한 제품의 최고급 대명사는 모피코트다. 모피코트는 10∼12월에 연간 매출액의 40% 이상을 올리는 계절상품으로, 한때 예물이나 예단 품목으로 각광받았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모피의 가공 및 수출에 전념했다. 당시 정부는 86아시아경기와 88서울올림픽의 개최가 모피의류를 우리나라의 특화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판단해 모피의류 산업을 수출 유망 업종의 하나로 지정하는 등 정책적으로 육성했다. 1980년대 후반 소득 수준이 높아진 국내에서도 모피의류가 유행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모피의류 산업은 매출이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전 세계적으로 모피 산업은 하향세가 뚜렷하다. 그럼에도 2015년 모피의류를 위해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죽임을 당한 밍크는 8400만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적인 동물보호단체인 PETA(동물을 인도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가 올린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수백만 마리의 거위와 오리에게서 산 채로 털을 뽑는 장면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류 브랜드인 구치는 내년부터 동물 모피 제품을 생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모피 동물 보호를 목적으로 결성한 국제연합인 ‘모피 반대 연합(Fur Free Alliance)’은 이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이미 영국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의 동물복지 선진국들은 국가적으로 모피 생산을 금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살아있는 오리나 거위의 털을 뽑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의 한 단체는 살아있는 동물로부터 채취하지 않고 정상적이고 윤리적으로 생산했다는 의미에서 ‘RDS(Responsible Down Standard)’라는 인증마크를 만들었다.

지구 평균온도가 지난 100년간 0.74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반도는 지구 평균의 2배에 달하는 1.5도 따뜻해지고 있다. 지구의 온도 변화로 북극이나 한대 지방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의 서식처가 줄어들고 있다. 지구의 온도가 1도만 올라도 생태계의 30%가 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 의류업체의 모피 생산 중단 선언은 표면적으로 동물 보호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따뜻해진 겨울 기온으로 모피제품이 경쟁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가 가져온 많은 현상 중에서 모피 생산 감소는 그나마 반길 만한 일이다.

장석환 아시아하천복원네트워크 의장 대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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