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만 맡겨둬선 안 되겠어” 한반도 문제 중재 나서는 유럽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3일 21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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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반도 문제 개입에 소극적이던 유럽이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기 시작했다.

미국과 북한과의 설전이 한반도를 넘어 세계 평화에 심대한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14일(현지 시간) 이례적으로 북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정치안보위원회의 특별회의를 개최한다.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대외관계청(EEAS)은 “북한 상황과 관련해 다음 단계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을 충실히 이행하는데 초점을 맞췄던 EU가 더 적극적인 중재를 모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4일에 이어 12일 또 다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갖고 북한 문제를 논의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모두가 책임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향후 역할을 예고했다. 9일에는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프랑스 정부 대변인이 국무회의 후 “프랑스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평화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해 중재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11일 “독일은 비군사적 해법에는 강하게 참여할 것”이라며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영국 노동당과 프랑스 사회당 등 주요 야당도 정부의 더욱 적극적인 중재를 요구하고 나섰다.

유럽 내부에서는 아직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세계 빅2 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관여된 이번 긴장이 현실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크다. 지그마이어 가브리엘 독일 외무장관은 9일 우간다 방문 도중 기자들과 만나 “1차 세계대전처럼 전쟁 속으로 몽유병 환자처럼 끌려 들어갈 우려가 있다. 이번 전쟁이 현실화된다면 핵무기가 개입될 것”이라며 경고했다.

독일과 영국 등 일부 유럽국가들은 2000년대 초 비판적 개입 정책에 따라 북한과 상호 수도에 공관을 개설한 이후 끈을 계속 유지해 왔다. 5차 핵실험 이후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북한 공관 폐쇄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최소한의 연결고리는 있어야 한다며 이를 거부했다. 루마니아 폴란드와 같은 구동구권과 스웨덴 등에서는 북한이 공관을 두고 나름 외교활동도 벌여와 대화의 물꼬를 틀 공간은 있다.

유럽은 미국과 북한 모두에게 자제를 요청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수위를 톤다운 시키는데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엔을 중심으로 질서 있는 대북 압박이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적 옵션을 강조한 돌출 과격 발언으로 오히려 흐트러졌다는 분석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1일 “전쟁이 나면 미국 편을 들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직접적인 답은 피한 채 “말로 긴장을 높이는 건 잘못된 답으로 어떤 문제도 풀리게 할 수 없다”고 미국을 간접 비판했다. 이날 회견은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군사적 해결책이 완전히 준비됐다”는 강경 입장을 밝힌 직후 이뤄졌다. 가브리엘 독일 외무장관도 “트럼프 대통령이 마치 김정은처럼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도 12일 “북한 정권이 갈등의 원인”이라면서도 “파트너들은 외교적 결과를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최측근인 다미안 그린 수석 국무대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국제기구를 통해서 북한 체제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르피가로지는 “파리 런던 베이징이 트럼프에게 게임을 자제하도록 압박을 넣고 있다”고 보도했고, 영국 가디언지는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 발언이 이 사태를 촉발했다”고 지적했다. 유럽 언론들은 “미국과 북한의 두 지도자 모두 예측불가능하다는 점이 우려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계속 전하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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