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주성원]평창 멧돼지와 ‘5G 올림픽’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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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원 논설위원
주성원 논설위원
먹을거리를 찾던 멧돼지 한 마리가 마을 어귀를 어슬렁거렸다. 밭 주변 작은 상자에 녀석의 시선이 고정된 순간, 상자에서 튀어나온 섬광과 고음에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지난해 말 KT가 강원 평창군 의야지 마을에 설치한 멧돼지퇴치기 폐쇄회로(CC) TV에 최근 잡힌 장면이다. 접근하는 물체를 영상과 레이저로 분석해 멧돼지 여부를 판단하고 소리와 빛, 냄새로 쫓아내는 이 장치는 5세대(5G) 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2025년 848조 원 거대시장

평창 겨울올림픽은 세계 첫 5G 올림픽이다. 카메라 100대로 찍은 영상을 동시에 받아 360도 돌려보는 피겨스케이팅 화면은 현재의 4G(LTE)보다 최대 20배 빠른 5G가 아니면 구현할 수 없다. 올림픽 사업권자인 KT는 삼성전자, 에릭손, 노키아, 퀄컴, 인텔과 함께 ‘평창 5G 규격’을 만들었다. 서창석 KT 네트워크전략본부장은 “통상 70개월 걸리는 규격 기술 개발을 올림픽에 맞춰 35개월로 단축했다”고 말했다. 이 5G 기술이 실생활에 적용된 곳이 세계 최초 ‘5G 빌리지’가 된 의야지 마을이다.

평창 올림픽이 처음부터 5G 올림픽으로 계획됐던 것은 아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당초 5G 상용화시기를 2020년으로 내다봤다. 한국이 이를 앞당겼다. 2015년 3월 KT 황창규 회장이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5G를 주제로 연설하면서 경쟁에 속도가 붙었다. 한국은 2018년 시범운용, 2019년 상용화를 목표로 내세웠다.

속도의 이유는 표준화에 있다. 표준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시장 선점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4차 산업혁명 토대 기술인 5G의 2025년 세계시장 규모는 7914억 달러(약 848조 원)로 예상된다. 단말기, 장비 같은 연관 산업 성장성도 크다. 이 때문에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이 표준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표준기술로 인정받으려면 △선도 기술을 개발해 △다양한 기업과 손을 잡고 △기술력을 과시하는 것이 필수다. 평창 올림픽은 놓칠 수 없는 ‘쇼 케이스’ 기회다. 5G 국제표준을 정하는 3GPP(이동통신 표준화기술협력기구)는 올 상반기 기술 검토에 들어간다.

한국 산업은 주로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성장해왔다. 조선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더 빠른 추격자 중국에 시장을 내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정보통신기술(ICT)만큼은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 자리를 지킨 분야다. 블루오션 개념을 창안한 김위찬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블루오션 시프트’에서 “기회를 창출하고 포착하는 조직들은 기존 산업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시장을 연다”고 밝혔다. 지금 한국에 이런 조직이 있다면 4차 산업혁명 전환기에 5G 개발에 앞서간 이동통신사들일 것이다.

기업은 스스로 기회를 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은 기업들은 기회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혁신이 없으면 도태된다는 사실도 잘 안다. 정부가 최근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등 ‘5대 신산업’을 선정해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굳이 정부가 나서지 않더라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연구개발(R&D)에 뛰어든 분야다. 억지로 성과를 내려고 간섭하면 역주행 가능성만 높아진다. 정부는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지원하는 역할로 충분하다. 그보다 “중국은 규제가 적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가장 먼저 시장에 내놓는데 우리는 규제 기관이 너무 많다”는 한 이통사 대표의 말부터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주성원 논설위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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