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불법체류 여성 손 잡아 준 전주출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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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9월 25일 17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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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 태국여성, 유산에 난치성 질환까지 발견
인권회의 개최, 벌금 면제와 체류자격 변경 의뢰

전주출입국-외국인 사무소© News1
전주출입국-외국인 사무소© News1
태국인 여성 A씨(37)는 2009년 9월1일, 부푼 꿈을 안고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어렵게 입국한 터라 A씨는 꼭 성공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희망이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입국한 A씨의 일터는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한 농장이었다.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고향에 있는 부모와 가족을 생각하면서 버텨냈다.

얼마 후 임금이 밀리기 시작했다. “현재 사정이 좋지 않다. 조금만 참아달라”는 농장주의 말을 믿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A씨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주거환경이었다. 당시 A씨는 외국인노동자 부부와 한 방을 써야만 했다. “곧 따로 방을 마련해 주겠다”는 약속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결국 A씨는 5개월 만에 농장을 나왔다.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 A씨는 대전의 양계장과 평택, 천안에 위치한 자동차부품업체를 떠돌며 일을 했다. 불법체류자였기에 정당한 대우도 받을 수 없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A씨에게 새 희망이 찾아왔다.

지난해 1월, 전북 익산으로 내려온 A씨는 그해 7월 B씨(44)를 알게 됐다. 서로 호감을 느낀 둘은 곧 교제를 시작했다. A씨는 자상한 성품을 가진 B씨와의 행복한 가정을 꿈꿨다. 아이도 생겼다.

하지만 불행은 또 찾아왔다. 올해 1월 A씨는 갑자기 유산을 했다. 유산 과정에서 특발성혈소판감소성자반증이란 진단도 받게 됐다. 이 질환은 혈소판 수가 줄어들어 점막이나 피부 또는 조직 내에 비정상적인 출혈을 일으키는 병이다. 면역이 약한 어린이나 생기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당장 치료비가 문제였다. 교회전도사였던 B씨는 도시락 배달과 한과 판매업으로 근근히 생활을 유지해왔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하고 싶지만 엄두가 나질 않는다. 현재까지 들어간 1000만원의 치료도 교인들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수술이 시급하지만 2000만원에 달하는 비용에 좌절해야만 했다.

게다가 A씨는 “다시는 임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들은 3월 혼인신고를 했다. 그리고 전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소장 이정욱)에 도움을 요청했다.

A씨는 “한국에서 병을 치료하면서 남편과 살고 싶다. 제발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전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A씨가 내민 손을 잡았다. 변호사와 교수, 종교인, 기자, 공공기관 종사자 등 민간인으로 구성된 ‘외국인 인권보호 및 권익증진협의회 회의’를 개최, A씨의 딱한 사연을 알렸다.

위원들을 만장일치로 도움을 줘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7명의 위원들은 “혼인의 진정성과 지속적인 치료의 필요성을 인정된다”면서 “이들이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결혼이민 체류자격(F-6) 변경을 허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안해 약 3000만원에 달하는 벌금도 면제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전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법무부에 전달했다. 법무부 장관이 승인하면 A씨는 불법체류자 신분을 벗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이정욱 소장은 “사실 8년간의 불법체류는 출입국관리법상 그 죄질이 매우 무겁다”면서도 “하지만 설령 불법체류자라고 해도 정말 딱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인도적 차원에서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을 보호하는 것도 출입국사무소의 일이다”고 말했다.

(전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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