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中 떠난 류샤, 아름다운 칼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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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의 투옥·감금 끝에 간암이 악화돼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난 류샤오보 같은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들을 보면 경탄을 넘어 경외의 느낌이 든다. 그들은 마블사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비유하자면 우주를 지배하려는 타노스와 아이언맨의 슈트도 없이,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도 없이 싸우는 사람이다. 중국 고사의 표현을 빌리면 무모하게 왕의 수레를 막아 세우겠다고 덤벼드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사마귀와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류샤오보의 부인 류샤에 대해서는 비구니처럼 짧게 깎은 머리에 건조한 느낌의 마른 여인이라는 인상이 거의 전부다. 그의 내면은 류샤오보가 류샤에게 쓴 시들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릴케의 시를 좋아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을 좋아한 여인, 칸트는 읽은 적이 없고 철학을 모르는 여인, 여러 번 금연을 맹세하고도 담배를 끊지 못한 여인, 종일 잡혀간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 담배가 없는 날은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와 같았던 여인.

▷류샤가 11일 중국을 떠나 독일에 도착했다. 중국 외교부는 “치료를 받으러 독일에 갔다”고 밝혔으나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중국 정부를 향해 인권 개선을 요구했다가 몇 차례나 경제 보복을 당했지만 “류샤를 외국으로 보내 달라”는 류샤오보의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중국 인권은 고사하고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한마디 못하는 정부가 집권하는 나라를 향해 진짜 인권을 존중하는 지도자는 어떻게 하는지 똑똑히 보여줬다고 하겠다.

▷류샤는 1982년 류샤오보를 만나 서로의 문학과 사상에 깊은 공감을 나누다 1989년 6·4 톈안먼 참극 고발을 계기로 사랑에 이른다. 1996년 류샤오보가 복역 중인 수용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류샤는 2010년 류샤오보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후 중국 정부의 압박이 심해지면서 심장병과 우울증을 앓아왔다.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칼날이 됐던 여인, 그러나 그 칼날은 자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았던 아름다운 칼날이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류샤오보#류샤#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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