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靑 관심갖는 판결 다각적 검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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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3차조사 결과 보니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청와대와 주요 재판을 놓고 거래를 하려 한 정황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3차 조사에서 드러났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2월 13일부터 벌여온 3개월여간의 3차 조사를 마무리하고 187쪽 분량의 조사 결과를 25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보고했다.

27일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이 추진했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당시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와 협상 전략을 모색한 문건이 추가로 나왔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청와대가 관심을 갖는 판결을 일일이 조사하고 처리 방향과 시기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의 효과적 협상 추진 전략’ 문건에는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청와대 의중에 거슬리는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법원이 신경을 쓰겠다는 취지로 읽히는 대목이다.

특조단은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의혹은 법원행정처가 법관 뒷조사를 한 파일이 기획조정실 컴퓨터 내에 존재하는지였고, 조사 결과 법관들에 대한 성향, 동향, 재산관계 등을 파악한 내용의 파일들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25일 밝혔다. 특조단은 이어 “재판과 관련해 특정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줄 것인지를 검토한 것이나 특정 법관들에 대한 성향 등을 파악했다는 점만으로도 공정한 재판을 위해 헌법이 선언한 재판의 독립, 법관의 독립이라는 가치를 훼손하려는 것으로서 크게 비난받을 행위”라고 지적했다. 특조단은 조사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에게 입장을 요구했으나 양 전 대법원장은 거부 의사를 밝혔다.

다만 특조단은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해 리스트를 작성해 조직적, 체계적으로 인사상의 불이익을 부과했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는 발견할 수 없었다”며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특조단은 의혹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는 취하지 않기로 했다.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고, 그 밖의 범죄 혐의는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사찰 피해자로 알려진 차성안 판사 등 법관들은 즉각 반발했다. 차 판사는 2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사법행정 조직을 동원해 나의 대학 시절, 재판, 인간관계, 재산 신고 내용까지 뒤진 사찰 행위가 바로 불이익 그 자체”라며 “법원을 상대로 국가배상청구로 정식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3차 조사 결과에 대한 법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서울 법원의 한 판사는 “법관들을 뒷조사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다른 한 부장판사는 “블랙리스트 프레임으로 사법부가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다”며 갈등 봉합을 주문했다.

김윤수 기자 ys@donga.com
#법원행정처#청와대#관심갖는 판결#다각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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