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다고 사람 내보내면 안된다”… 23년 한결같은 ‘正道 경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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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LG회장 타계]소탈-온화했던 ‘인간 중심의 경영자’

구자경 LG 명예회장과 가족들이 2012년 4월 24일 서울 코엑스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미수연에서 축하 떡을 자르는 모습. 동아일보DB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정도(正道)를 걸어온 기업인이다. 1995년 그룹 회장직에 오른 뒤 23년간 한결같이 이를 지켜왔다. 인화의 LG에 1등 DNA를 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어디까지나 정도 경영의 틀 안에서였다.

1995년 2월 22일, 취임식 직후 구 회장은 기업 슬로건으로 ‘정도경영’을 제시했다. 경영진은 ‘정도’라는 단어에 우려를 표했다.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일도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구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1등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1등 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며 반대를 물리쳤다.

2009년 구 회장의 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 결혼식 주례를 본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전 KB금융 회장)은 고인에 대해 “LG그룹을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고 기억했다.

그럼에도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이 주요 대기업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받았던 ‘차떼기 사건’에서는 LG그룹도 자유롭지 못했다. “당시 구 회장은 ‘정도경영을 떠들던 내가 창피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며 ‘정도경영, 사랑해요, LG’ TV 광고를 바로 내리라고 지시했고, 그해 말 언론인 모임 송년 행사에도 볼 낯이 없다며 참석하지 않았을 정도로 양심적인 분이었다.”(정상국 LG상남언론재단 감사)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1996년 사내 경영혁신 활동대회인 ‘LG 스킬올림픽’에서 직원들과 어울리고 있다. 사진 출처 구본무 홈페이지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1996년 사내 경영혁신 활동대회인 ‘LG 스킬올림픽’에서 직원들과 어울리고 있다. 사진 출처 구본무 홈페이지
고인은 일을 맡길 때는 단기적 성과가 좋지 않아도 끝까지 믿어주는 스타일이었다. “사람을 한 번 믿었으면 일일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어려울 때 사람을 함부로 내치지도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영 환경이 최악으로 치닫던 2008년, 실적 악화에 시달리는 계열사를 중심으로 임직원 구조조정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구 회장은 “어려울 때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된다”며 경영진을 다독였다.

평소 차 안에서 신문을 보다 의로운 행동이 소개된 기사를 보면 비서진에 전화해 위로금을 전달하라고 당부하는 등 기업인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려 애썼다. LG복지재단이 ‘LG의인상’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LG연암문화재단이 총공사비 620억 원을 들여 2000년 세운 ‘LG아트센터’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고인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생전 소탈한 모습으로도 유명했다.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 뒤편 삼계탕집, 마포구 평양냉면집이나 간장게장집 등 몇몇 단골 음식점에 비서 없이 홀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 식당에 가면 종업원에게 직접 1만, 2만 원이라도 손에 살짝 쥐여줬고, 반말로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도 없었다. 2003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삼계탕집 ‘토속촌’으로 초청했을 때, 구 회장은 대통령 바로 왼편에 앉아 국물도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워 참석자들의 눈길을 모았다.

고인은 새, 물고기 도감을 만들 정도로 전문가였다. 100∼150m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새 이름도 척척 맞혔다. 평소 “200종류 정도는 날아가는 모습만으로도 이름을 맞힐 수 있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꼭대기층 집무실에 새 관찰용 망원경을 설치해 밤섬을 보곤 했는데, 한번은 밤섬에서 새 알을 무작위로 채취해 가는 사람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일도 있었다. 최근까지는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 화담숲 수목원을 가꾸는 데도 정성을 쏟았다.

지인 자녀 결혼식 등 경조사가 있을 때면 수수한 옷차림으로 조용히 다녀가기로 유명했다. 동아일보 90주년 기념행사에도 수행원 없이 혼자 행사장을 찾았다. 행사가 끝나면 직접 운전사를 불렀고, 행사장이 복잡하면 500m 넘는 거리도 걸어 다녔다. 와인 애호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술은 위스키를 즐겼다.

큰 무대에 오르는 것은 꺼렸지만 담소를 나누는 작은 모임은 즐겼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의 ‘화담(和談)’이란 호를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화목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해 이 호를 고인도, 주변 사람도 마음에 들어 했다. 때로는 손수건이나 링을 이용해 마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고인은 마지막까지 회사를 챙겼다. 지난해 4월경 첫 번째 뇌수술을 받은 뒤 화담숲에 머물 때도 사업 관련 보고를 받았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고인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모님이 휴대전화를 빼앗았을 정도로 마지막까지 일을 챙기셨다”고 전했다.

서동일 dong@donga.com·김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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