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식 전문기자의 스포츠&]‘소니’ 군면제, 메달만이 능사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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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아시아경기 축구대표팀에 와일드카드(나이 제한 없는 엔트리 3명)로 합류할 수 있을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손흥민이 아시아경기 축구대표팀에 와일드카드(나이 제한 없는 엔트리 3명)로 합류할 수 있을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안영식 전문기자
안영식 전문기자
“이미 아들 둘이나 군대 보냈는데, 막내는 면제시켜 주면 안 되나? 그런 공약 내건 국회의원, 대통령 후보가 있었으면 확실히 찍어 줬을 텐데….” 차남인 필자를 포함해 아들만 셋 낳으신 어머니가 막냇동생의 입영통지서를 보고 했던 말이다. 농담이 아닌 진담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사회지도층 자제와 유명인의 병역 비리가 연일 터져 나왔기에.

병역(兵役)은 지구촌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남자의 숙명이다. 대학 부정입학과 더불어 불법적인 병역 면탈은 국민적 분노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 잣대가 국가대표인 태극전사들에게는 관대한 편이다. 온 국민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한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아시아경기 우승자의 병역 면제에 큰 거부감은 없는 듯하다. 먼 훗날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최근 치러진 2018 평창 겨울올림픽까지는 그렇다.

병역법에 명기된 ‘병역 면제 태극전사’의 공식 명칭은 ‘체육요원’이다. ‘국제경기대회 입상으로 국격(國格) 향상에 기여한 체육특기자를 관련 분야(선수, 코치, 감독 등)에 34개월간 종사하게 함으로써 군 복무를 대체한다’고 명시돼 있다. 프로 종목 선수도 기초 군사훈련(4주)만 이수하면 소속 프로 팀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뛸 수 있다. 2018년 3월 현재 대한민국의 현역 체육요원은 49명이다.

그런데 체육요원으로 가는 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1973년부터 시행된 체육요원 제도는 올림픽은 물론이고 세계선수권(청소년대회 포함), 유니버시아드, 아시아경기 및 아시아선수권(청소년대회 포함) 3위 이내까지 병역혜택을 받았다. 심지어 한국체대 졸업성적 우수자(10%)까지도 대상자였다.

이 중에서 1984년부터 아시아경기는 금메달리스트로 축소됐고, 세계청소년대회는 아예 제외됐다. 급기야 1990년부터는 올림픽(금, 은, 동메달)과 아시아경기(금메달)로 한정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열풍에 ‘월드컵 축구 16위 이상’과 ‘WBC 4위 이상’이 잠시 추가됐지만 2007년 두 대회 모두 체육요원 선정 대상에서 빠졌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은 6월 14일,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아경기는 8월 18일 개막한다. 현행 규정대로라면 프리미어리그(잉글랜드 프로축구 1부 리그)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는 손흥민(26·토트넘)은 대한민국이 러시아 월드컵에서 16강을 넘어 8강에 진출하더라도 체육요원에 뽑힐 수 없다.

반면 한국이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아경기 축구에서 우승한다면 손흥민은 병역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아시아경기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인정하는 A매치(연령 제한 없이 구성된 국가 최강 대표팀 간의 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손흥민의 소속 클럽인 토트넘은 그의 국가대표 차출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게 변수다. 23세 이하 대표팀이 출전하는 아시아경기에 과연 손흥민이 와일드카드(나이 제한 없는 엔트리 3명)로 출전할 수 있을지 여부는 대회가 임박할수록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를 것이다.

체육요원 제도는 대한민국 남자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는 확실한 ‘당근’이다. 선수 생활 전성기와 군 복무 시기가 대체로 맞물리기에, 특히 고액 연봉 프로선수들에게는 동기 부여 효과가 탁월하다.

그런데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과 아시아경기 메달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매년 열리는 각 종목의 세계선수권과 월드컵 시리즈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기량을 연마해야 가능하다.

선수 입장에서는 실력과 함께 운(運)도 따라야 가능한 일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손흥민이다. 그는 2012 런던 올림픽과 2014 인천 아시아경기에 이런저런 사유로 차출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은 런던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인천 아시아경기에서는 금메달을 따내 출전 선수들이 메달 포상금보다 탐나는 보너스(병역 면제)를 받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시대도, 세대도 바뀌었다. 체육요원 제도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결과(올림픽 메달, 아시아경기 우승)를 위해서는 과정(세계선수권, 각종 월드컵 시리즈 등)도 중요하다. 올림픽과 아시아경기 이외의 국제대회에도 꾸준히 출전해 국위를 선양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성적과 출전 및 차출 횟수 등에 따른 포인트제 도입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체육요원이라는 용어부터가 촌스럽지 않은가.
 
안영식 전문기자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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