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월드]“심폐 소생할 필요 없다” 119 왔는데 말기암 환자 살리지 말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4일 15시 58분


코멘트
“어머니가 숨을 안 쉬세요.”

119로 들어온 다급한 신고에 현장에 달려간 일본 가와사키(川崎) 시 소방국 구급대원은 침대에 누워있던 80대 여성을 바닥에 내려 심장마사지를 시작했다. 여성은 말기암 환자로 딸 부부와 살고 있었다. 구급대원이 평소 진찰하던 주치의에게 전화해 대응방도를 묻자 “심폐 소생 조치를 할 필요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의사는 전날 여성의 딸과 자택에서 임종을 맞자고 결정했고, 만약의 사태가 닥치더라도 구급차를 부를 필요가 없다고 설명해줬다는 것이다. 혼란에 빠진 딸은 의사와 통화한 뒤에야 안정을 찾고 심폐소생 조치 중지에 동의했다. 구급대원은 12분간 진행하던 심장마사지를 중단했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종말기 고령 환자에 대한 심폐소생 응급조치를 중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4일 전했다. 신문이 전국 52개 소방본부에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신고를 받고 간 구급대원이 일단 시작했던 응급조치를 가족의 요청으로 중단한 일이 최근 3년 간 공식 확인 건수만 54건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명확한 법이 없어 기관마다 대응은 제각각이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재택의료 보급으로 자택이나 노인시설에서 임종을 맞는 사람이 늘고 있다. 주치의 입회 하에 임종을 맞으면 괜찮으나 응급상황에 구급차를 부르면 문제가 생긴다. ‘구명(救命)’이란 구급대원의 임무와 가족의 입장이 부딪히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주치의가 전화로 심폐 소생조치 중단을 요청하면 구급대원들이 이에 따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제각각이다. 호쿠리쿠(北陸)에서는 심장이 멎은 아버지에 대해 아들은 심폐소생을 원치 않았으나 부인이 강하게 주장해 가족 간 의견이 갈린 사례가 있었다. 도쿄에서는 심야 상황이어서 주치의가 전화를 받지 않는 바람에 장시간 소생조치를 계속한 경우도 있었다.

요미우리신문 조사에 따르면 소방본부의 40%는 “소생조치를 중단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반면, 50%는 “구급대가 출동한 이상 가족을 설득해 소생조치를 한다”고 응답했다.

일본 정부는 정확한 규정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명치료나 심폐 소생소치 중지에 대한 명확한 절차를 정한 종말기 의료지침을 만들어 4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환자와 가족, 의사가 평소 기회 있을 때마다 대화하는 ‘어드밴스드 케어 플래닝(Advanced Care Planning)’이 권고된다. 병세가 깊어져 본인이 의사표시하기 어려워질 상황을 상정해 미리미리 가족들과 대화하고 그 내용을 문서로 정리해 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 모든 것은 원치 않는 소생조치나 연명의료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