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안 된 아파트는 부르는 게 값” 재건축 규제로 새 집 공급 위축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4일 17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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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강남에서 지은 지 10년 안 된 아파트는 매물이 귀해서 부르는 게 값이에요.”

서울 서초구 반포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달 전 16억5000만 원에 거래된 래미안퍼스티지 전용면적 86㎡ 아파트가 지금 시세는 18억 원이라는 것이다. 그는 “매수인이 어제 잔금을 치렀는데 집 파는 사람이 (계약금 받은 뒤) 한 달만에 1억 원이나 손해를 보게 됐다며 속상해했다”고 했다. 아크로리버파크 등 인근의 다른 아파트도 사정이 비슷하다.

요즘 강남에서 소위 ‘잘 나가는’ 일반 아파트는 대부분 재건축을 통해 공급된 것들이다. 최근 정부는 재건축 연한 및 안전진단 강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에 따른 ‘부담금 폭탄’까지 예고하며 재건축 사업을 압박하고 있다. 재건축 사업이 위축되면 가뜩이나 부족한 서울의 새 집 공급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5~2017년 3년간 서울에서 새로 분양한 아파트는 12만6920채. 이 가운데 재건축을 통해 공급된 아파트가 5만2544채로 41.3%를 차지한다. 새 집을 지을 땅이 부족한 서울에선 낡은 주택이나 아파트를 허물고 짓는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새 아파트 공급의 주요 수단이다. 특히 강남은 재건축 의존도가 높다. 최근 3년간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구)에서 신규 분양한 2만5322채 가운데 88.4%가 재건축 아파트였다. 정부가 투기 수요를 잡으려고 ‘재건축 때리기’에 나섰다가 장기 수급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2015년 기준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96%에 불과하다. 인구수에 포함되지 않는 외국인, 멸실가구 등을 고려하면 최소 110%는 돼야 주택 보급이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서울 근처 수도권 도시에 신규 택지를 공급한다는 방침이지만 서울 수요를 분산할 만큼 공급을 늘리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결국 재건축 위축으로 공급이 줄어들면 이미 지은 새 아파트 값만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 규제로 재건축 수요를 억눌렀다가 이후 한꺼번에 사업이 추진되면 공급이 몰리는 부작용도 나타날 수도 있다. 이영진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재건축을 하지 못한 곳이 최근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반포동, 잠원동, 압구정동 단지들이다. 재건축 연한을 늘려도 지금 문제를 뒤로 미루는 것일 뿐 근본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했다.

정부가 안전진단을 강화하면 노후주택의 안전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는 구조안전성 평가 외에도 층간소음이나 에너지효율 등 주거환경 평가를 반영해 주민들이 불편하다고 판단되면 재건축을 허용해준다. 서울 주요 노후단지들은 대부분 내진설계가 안돼 있고, 주차공간이 부족하다. 배관설비가 낡아 불편을 겪는 곳이 많다. 이는 정부가 추구하는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 방향과도 맞지 않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재건축 규제는 강남 집값이라는 단기적인 틀이 아니라 서울 전체의 공간계획이라는 장기적이고도 포괄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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