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인 안받고 지하철 선로작업… 30대 일용직 또 참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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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호선 온수역~오류역 구간… 현장에 처음 나온 용역업체 인부
출근시간 작업하다 열차에 치여… 노량진사고 이어 6개월만의 人災

14일 선로에서 작업하던 도중 열차에 치여 숨진 전모 씨의 작업화와 장갑, 휴지 등 각종 소지품.
14일 선로에서 작업하던 도중 열차에 치여 숨진 전모 씨의 작업화와 장갑, 휴지 등 각종 소지품.
“막일해 번 돈 6만∼7만 원씩을 거울 밑에 몰래 넣어두던 효자였어요.”

어머니 이모 씨(63)는 14일 장례식장에서 아들의 유품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훔쳤다. 이 씨의 아들 전모 씨(36)는 이날 오전 8시경 서울 전철 1호선 온수역∼오류역 구간 야외에서 선로작업을 하다 열차에 치여 숨졌다. 마트 계산대에서 일하는 이 씨는 출근길에 연락을 받았다. 색 바랜 갈색 작업화와 해진 검은색 배낭을 보고서야 새벽에 배웅한 아들이 숨졌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최종학력 중졸인 전 씨는 20대 초반부터 일용직이었다. 주로 학교, 관공서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이날이 지하철 선로작업 첫날이었다. 용역업체에 사흘 전 고용된 전 씨는 동료 2명과 선로 양옆 배수로에 칸막이(덮개)를 설치하는 작업에 투입됐다. 선로 양쪽을 오가며 일하던 전 씨는 온수역 앞 약 300m 지점에서 양주행 전동차에 치여 현장에서 숨졌다. 열차 기관사는 경찰조사에서 “전 씨가 뛰어들었다”고 진술했다.

이번 사고도 올 6월 코레일 운영구간에서 발생한 ‘노량진역 사고’처럼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되풀이되는 인재(人災)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과 코레일에 따르면 용역업체는 코레일의 작업 승인을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장에는 선로감시원도 없었고 기관사들에게도 선로작업 사실은 고지되지 않았다. 전 씨를 비롯한 근로자 3명도 온수역장의 승인을 받지 않고 방음벽 출입문으로 작업현장에 들어왔다. 평소 자재운반용으로 열어둔 상태였다. 코레일 관계자는 “작업 승인 전 상황이라 통제가 불가능했다. 시공과 감리 모두 외주 용역을 줬기 때문에 코레일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코레일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열차운행 중 선로작업 중지 명령’을 사실상 어기고 공사를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청은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영등포역 구간에서 안전표지판을 설치하던 근로자가 열차에 치여 숨진 노량진역 사고 이후 위험구간에서의 열차운행 중 선로작업 중지를 명령했다. 이날 사고 지점도 이 명령이 적용되는 구간이다. 코레일 측은 “노동청이 작업중지를 지시한 것은 선로와 궤도 유지보수 업무고 배수로 작업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도로공사를 할 때도 차로를 막는데 코레일 측은 이 같은 기본을 선로작업에서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숨진 전 씨를 고용한 용역업체, 감리업체, 코레일 측 모두 안전상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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