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성공하고 싶다면 페미니즘을 공부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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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1. 식당 직원이 어려 보이면 반말을 한다.

2. 실랑이를 벌일 때 여성에게 윽박지르다 남성이 나타나면 태도를 바꾼다.

3.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표현을 종종 한다.

4. 남자의 성욕은 본능이다.

5. 남자가 유흥업소에 가는 것은 사회생활의 일부다.

6. 여직원이 나대는 꼴은 못 보겠다….

모두 내가 참여한 세미나의 토론 문제로 나온 것들이다. 올 한 해 매달 젠더와 페미니즘 분야 교수인 줄리아 우드의 ‘젠더에 갇힌 삶’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세미나를 진행했다. 나는 학생이었고, 선생님은 따로 있었다. 내게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문현아 박사는 매달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세미나를 시작했다. 한 해 동안의 세미나는 내가 얼마나 남성 위주의 사고와 언어에 익숙해져 있는지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세미나를 시작한 이유가 있었다. 작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책을 소개하는데 ‘여류 작가’라는 표현을 썼던 적이 있다. 방송을 들은 아내가 내게 ‘여류 작가’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을 때, 부끄럽게도 나는 그게 왜 문제인지를 몰랐다. 곧이어 아내가 “자기는 남성 작가를 소개할 때, 그 사람이 남자라는 것을 밝히거나 남류 작가라고 말해?”라고 반문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페미니즘에 진지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막연하게 스스로 성평등적인 사고를 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었다. 굳이 성별을 표현하고 싶다면 여성 작가라고 하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남자=인간’이라는 남성 중심 사고를 하고 있었고, 결국 젠더를 연구하는 선생님에게 ‘과외’를 부탁했다.

위의 토론 문제를 보면 페미니즘에 대한 몇 가지를 깨닫게 된다. 첫째, 줄리아 우드가 정의하듯 페미니즘이란 여성 우선주의라기보다는 ‘삶을 존중하고 평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태도와 행동을 뜻한다. 어리다고 반말을 하거나 차별적 언사를 하는 행위를 피하는 것이 페미니즘에서는 기초이다. 둘째, 위의 문제 중 4번은 얼마 전 탈락한 장관 내정자가 책에 썼던 대목인데, 쉽지 않은 문제였다. 친구나 선배들로부터 술자리에서 받은 성교육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성욕이 본능이라면 남성만이 아닌 인간 모두의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젊은 시절 다른 직장인들도 간다는 이유로 사회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며 유흥업소에 들락날락한 적이 있으며, 남성이 담배 피우는 것은 자연스럽게 보면서도 여성이 피우는 모습 앞에서는 당황한 적도 있었다.

앞으로 직장에서 생존하고 리더로 성장해가기 위해서는 여성과 남성 모두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 병원에서 간호사들에게 자신들의 뜻과 상관없이 야한 복장에 춤을 추도록 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또 한 가구회사는 사내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문화의 민낯을 드러냈다.

언어생활을 돌아보는 것은 페미니즘 실천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종종 들을 수 있는 “젊은 여자가…” “나보다 어린 것이…”와 같은 언어 사용이 문제가 된다는 점을 자각하고 주의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를 선발하고 승진시키는 위치에 있다면 보다 성평등이라는 관점을 기반으로 그 과정을 들여다보자. 단순히 직장 내 여성의 수보다는 팀장 및 임원 회의 때 과연 남성과 여성의 수는 균형을 이룬 것인지, 더 나아가 의견 개진이나 의사 결정에서도 성평등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대기업 임원 세미나에 가보면 여성 임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반면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기업에는 여성 임원은 물론 최고경영자(CEO)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여성 인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기업문화가 아직 성평등 시각을 갖추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다. 내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 직업인으로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이다. 나이, 성별, 성적 취향, 학력 등과 상관없이 다양한 인간의 삶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바라보는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고서는 향후 리더로 성장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페미니즘#줄리아 우드#삶을 존중하고 평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태도와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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