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3층서 뛴 어린 남매, 맨손으로 받은 ‘슈퍼 소방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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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소방서 정인근 소방경, 신장암 수술후 복대차고 근무중
화재현장 출동해 3, 5세 아이 구해

“어서 뛰어내려라. 아저씨가 안전하게 받아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정인근 서부소방서 원당119안전센터장(54·소방경·사진)이 다세대주택 3층을 쳐다보고 말했다. 3층 복도 창문 틈새로 아주 어린 남매가 울면서 손을 내밀며 “살려주세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남매 옆에서는 30대 엄마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같이 소리를 질렀다. 1층 재활용센터에서 일어난 불은 3층으로 번지며 시커먼 연기를 내뿜었다.

에어매트를 깔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정 센터장은 양팔을 벌리며 “아저씨를 믿어”라고 소리쳤다. 5세 누나와 3세 동생이었다. 몇 초 후 엄마는 딸의 양쪽 손목을 잡고 창 아래로 가장 멀리 늘어뜨렸다. 정 센터장이 그 밑으로 바짝 다가섰다. 아이와 정 센터장 사이는 3m 남짓. 엄마가 손을 놓았다. 아이가 정 센터장 품으로 떨어졌다. 무사히 길에 내려놓았다. 마찬가지로 동생도 정 센터장이 팔과 가슴으로 받아냈다. 한숨 돌린 정 센터장은 5층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주민 8명을 구하러 비상계단으로 뛰었다. 주민들에게 산소공급 마스크를 번갈아 씌우며 건물 바깥으로 피난시켰다.

화재는 20일 오전 10시 50분경 인천 서구 왕길동 48가구가 사는 다세대주택에서 발생했다. 큰 인명피해는 없었다.

구조를 다 마친 정 센터장은 흐트러진 허리 복대를 다시 가다듬었다. 그는 지난달 25일 신장암 수술을 받았다. 복강경(腹腔鏡) 시술로 콩팥 일부를 떼어냈다. 이달 30일까지 병가를 냈지만 수술 부위가 다 아문 것 같아 13일 출근했다. 센터를 더 비울 수는 없다고도 생각했다. 1988년 소방관이 된 정 센터장은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소방관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더 말하기도 쑥스럽다”고 말을 아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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