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부부들 “우리 얘긴 안듣고…” 분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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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시술 건보, 44세 이하만 적용… 횟수도 10번 이내로 제한
“40대 만혼 느는데 나이제한 웬말… 의사 말 믿고 지원 다 받았는데…”

39세의 늦은 나이에 결혼해 2015년부터 난임 시술을 받은 박미영(가명·42) 씨는 정부가 지원하는 체외수정(시험관) 시술을 세 번 받은 끝에 임신에 성공했다. 하지만 열 달을 품어 낳은 아이는 단 열흘 만에 유전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절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건강보험 적용이 돼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나이(44세)까지 시간이 얼마 없어서다.

10월 난임 시술 건강보험 적용을 앞두고 환자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청와대와 국민신문고, 보건복지부 사이트 등에는 난임 건보 적용을 비판하는 글이 줄을 잇는다. 동아일보는 18∼20일 포털사이트 난임·육아카페에 환자들의 의견을 구하는 글을 올렸다. 단 하루 만에 30여 통의 e메일이 왔고, 사흘 새 100건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환자들은 정부가 세부 정책의 시행을 불과 보름 앞두고 발표한 데 분통을 터뜨렸다. 4년째 임신을 시도하고 있는 최모 씨(39)는 올 10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는 말에 정부 지원을 모두 썼다. 앞으로는 건보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기존 정부 지원을 다 받은 사람은 건보 혜택 대상이 아니라는 발표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미리 알았다면 정부 지원을 빨리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난임 시술에 대한 정부 지원은 10회로 제한된다.

의료진이나 보건소로부터 혜택에 제한이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들었다는 사례도 많았다. 서울의 한 난임 시술 병원에 다닌 36세 여성은 “주치의가 ‘건보가 적용되면 지원 횟수가 새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보건소 담당 직원이 ‘(건보 적용의) 횟수 제한을 두겠느냐. 정부 지원을 9월 30일까지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정부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현장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않아 혼선이 발생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0일 한국난임가족연합회가 연 공청회에 참석한 한 여성은 “정부가 공청회나 입법예고만 했어도 우리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했을 것”이라며 “정책 발표 15일 후 곧바로 시행하겠다고 나선 것은 애초 환자 얘기를 듣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정책위원회 논의가 9월까지 이뤄졌고 시행은 10월로 예정돼 어쩔 수 없었다”며 “(난임 환자들 사이에) 잘못된 소문이 돈 것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나이나 시술 횟수 제한은 예전에도 있었다”며 “모든 정부 정책 결정에 당사자들을 참여시킬 순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난임 환자들은 “정부가 현실을 너무 모른다”며 울분을 토한다. 갈수록 만혼이 늘면서 고연령 시술 환자가 늘 텐데 건보 적용이 이런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년간 난임 시술을 받은 김모 씨는 “정부가 건보를 적용하면서 시술 병원들을 평가해 수가를 차등화하기로 했다는데, 그 평가기준에 시술 성공률이 들어가 있다”며 “나이 많고 시술 횟수가 많은 환자일수록 임신 성공률이 떨어질 텐데 앞으로 어떤 병원이 중증 난임 환자들을 달가워하겠느냐”고 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난임부부#정부#체외수정#나이제한#44세#만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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