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청년 일자리 늘리려면…” 고용부 장관도 아닌 차관의 ‘이례적 호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1일 15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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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열 기자의 을(乙)과 함께 하는 법

고영선 고용노동부 차관
고영선 고용노동부 차관

대선 후보들이 너도나도 중소기업 지원과 육성을 공약으로 내놓고 있는 가운데 정부 고위 당국자가 직원 250명 이상의 중견기업과 대기업 비율을 늘리는 쪽으로 국내 산업구조를 개편해야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고영선 고용노동부 차관이 주인공인데요, 고 차관은 최근 노동경제학회에 ‘저성장 시대의 일자리 정책’이라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특정 학회에 보고서를 낸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오는데요, 고 차관은 이 학회에 직접 참석해 축사를 하면서 보고서 내용을 직접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고 차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제조업에서 250인 이상 기업의 고용비율은 27.6%밖에 되지 않습니다. 고용률이 70%를 넘긴 독일(53.2%)이나 스웨덴(47.3%)은 물론이고 청년실업이 심각한 프랑스(44.3%)나 영국(41.2%)보다도 적습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250인 이상 제조업체의 고용비율이 한국보다 적은 나라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등 5개 국가뿐입니다.



고 차관은 이렇게 대기업의 고용 비율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이 국내 일자리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특히 한국의 중소기업은 대부분 저부가가치 산업에 집중 분포돼 있어 일자리 질이 전반적으로 낮다고 밝혔습니다. 300인 미만 사업장 일자리의 27.3%가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이고, 국내 전체 비정규직의 72.2%가 29인 이하 사업장에 몰려 있지만 300인 이상 대기업은 비정규직 비율이 13.6%에 불과할 정도로 적습니다. 이 때문에 날이 갈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다 더 커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중소기업들이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에 많이 몰려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영세자영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정책이라고 고 차관은 지적합니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2015년 기준 보증 규모는 79조7000억 원인데, 이는 주요 선진국보다 매우 높은 수준일 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에서 자체적으로 신용 검증이 가능한 기업에까지 지나치게 많은 보증을 제공하다보니 중소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유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런 점을 근거로 고 차관은 “장기적으로는 대기업의 비율을 높이는 게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독일, 스웨덴 수준으로 대기업 비율이 올라가야 일자리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고 차관은 “좀비기업이나 한계기업을 과감히 퇴출해서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이 일감을 더 많이 가져가면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면 질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다”며 “다만 경제력 집중이나 세습, 순환출자 등 재벌에 대한 반감을 갖게 만드는 과오에 대해 재벌 스스로 반성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법도 찾아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고 차관은 또 “일자리 창출은 신생기업에서 많이 이뤄진다”며 “창업초기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집중해 대기업으로의 성장을 유도하는 것이 일자리 문제 해결의 근본적 방안”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대선이 임박하면서 중소기업 육성 공약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어떻게 유도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비록 임기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정부의, 장관도 아닌 차관이 주장한 내용이지만, 대선후보들이 국내 노동시장에서 을(乙) 중의 을(乙)인 청년들을 위해 이런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봤으면 좋겠습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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