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뿌리읽기]<157>(기슭 엄)

  • 입력 2005년 1월 23일 17시 57분


코멘트
(엄,한)은 갑골문에서 깎아지른 바위 언덕을 그렸다. 금문에서는 소리부인 干(방패 간)을 더해 2(굴바위집 엄)으로 쓰기도 했는데, 이는 이후 山(뫼 산)을 더한 岸(언덕 안)으로 분화했다.

북경 원인이 살던 周口店(주구점)을 보면, 바위언덕에 만들어진 동굴이 초기의 훌륭한 거주지였음을 알 수 있다. ‘설문해자’에서 (엄,한)을 ‘사람이 살 수 있는 바위 언덕’이라 풀이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엄,한)은 바위(돌), 깎아지른 절벽, 집 등을 뜻한다.

예컨대 厓(언덕 애)는 (엄,한)과 圭(홀 규)의 결합인데, 圭는 높이 쌓은 흙(土·토)과 그 그림자를 그려 ‘높다’는 뜻을 그려낸 글자다. 그래서 厓는 ‘높은 언덕’을 말하며, 그 뒤 산에 생긴 언덕은 崖(벼랑 애)로, 강이나 물가에 생긴 언덕은 涯(물가 애)로 구분해 표현했다.

原은 깎아지른 언덕((엄,한))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모습(泉·천)을 그려 샘물의 ‘근원’을 말했다. 原이 평원이라는 뜻으로 쓰이자 다시 水(물 수)를 더하여 源(근원 원)으로 분화했다.

또 厚(두터울 후)는 (엄,한)과 1(두터울 후)로 구성되었다. 1는 갑골문에서 술 같은 것을 쉽게 담도록 한 큰 아가리, 주정이나 향기가 잘 증발하지 않도록 한 잘록한 목, 많은 양을 저장하도록 한 두툼하고 큰 배, 모래나 황토 등에 꽂아 세울 수 있도록 한 뾰족한 바닥을 가진 토기를 그렸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것을 청동을 제련하던 용광로로 보기도 하지만, 술을 저장하기 위한 대형 독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술을 대량으로 저장할 커다란 독이라면 기물의 두께를 두툼하게 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1에서 두텁다는 뜻이 나왔다.

厚는 산이 두터운 것을 말한다. ‘높은 산에 올라 보지 않으면 하늘의 높음을 알 수 없고, 깊은 계곡에 가 보지 않으면 땅의 두터움을 알 수 없고, 선현의 말씀을 들어보지 않으면 학문의 위대함을 알 수 없다’고 했던 순자의 말처럼, 땅의 두터움을 아는 데는 계곡의 깎아지른 절벽만한 것이 없었기에 ‘산의 두터움’에 (엄,한)이 의미부로 채택되었을 것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