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의 신체적 능력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4일 14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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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허치슨 지음·서유라 옮김
504쪽·1만9800원·다산초당

‘endure(인듀어) 1. 견디다, 참다, 인내하다 2. 그만두고 싶은 충동과 계속해서 싸우며 현재 상태를 유지하다.’

책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 위의 짤막한 설명. 좀 부풀리자면, 이게 제목과 함께 이 책의 ‘앙꼬’다. 기록 경신에 도전하는 운동선수가 신체적 능력을 한 톨까지 쥐어짜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스포츠에서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과학 전문 칼럼리스트인 저자가 그 오래토록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쫓는 여정이 이 책에 담겼다.

뼈대만 놓고 보자면, ‘인듀어’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신체적 능력을 발현하는데 결국은 뇌가 중요하더란 얘기다. 앞서 언급한 인듀어의 두 번째 뜻을 잠시 되새김질하자. 이는 이탈리아 과학자 새뮤얼 마코라가 ‘지구력’에 대해 내린 정의이기도 하다. ‘노력(effort)’이란 말로도 대체 가능한 이 지구력은 육체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을 둘 다 강조한다.

예컨대, 몸과 기술을 갈고 닦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마지막 차이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어쩌면 ‘뻔하고 맥 빠지는’ 설명이다. 이 책도 내가 바라면 우주의 만물이 도와준다는 ‘시크릿’ 류의 판타지였단 말인가. 물론 그럴 리야 없다.

‘인듀어’는 스포츠라는 무대에서 인간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신체 시스템 자체에 주목한 책이다. 인간도 기계처럼 좋은 하드웨어를 갖추면 성적이 오르는 것일까. 당연히 그게 기본 전제겠지만, 여기엔 소프트웨어라 할만한 뇌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인간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든, 뇌가 지닌 보호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든 말이다.

“뇌 자극이 우리 몸의 숨겨진 지구력 저장고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인지 아닌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험이 선수들에게 지구력 저장고의 존재를 믿게 해 주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안장 위에 앉은 두 명의 경쟁자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무기는 자신이 더 나은 기술로 무장하고 있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일단 이 책은 재밌다. 딱히 위트가 넘치는 건 아닌데, 과학책이 이렇게 흥미진진해도 될까 싶다. 이는 저자가 캐나다 육상 대표선수 출신이란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자신의 경험을 잘 살려 운동선수와 과학자의 다양한 면모와 속내를 잘 짚어냈다. 마라톤 등산 경보 사이클 등 여러 분야를 취재해 재밌게 엮은 점도 높이 살만 하다. 특히 통증과 근육, 산소, 더위, 갈증, 연료 등 운동능력의 한계와 직결된 여섯 가지 분야를 정리한 2부는 탁월하다. 콘텐츠와 문장력이 이만큼이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저술은 쉽게 만나기 힘들다.

다만 책의 흐름과는 별개로, 묘한 ‘세상의 이치’도 묻어난다. 물리학 생리학 등의 총체라 할 수 있는 이런 인체 과학이 실은 다 목적이 있어서 발전했다는 걸 깨닫게 만든다. 산업혁명 전후엔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노동자를 부려먹을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기엔 얼마나 더 강인한 군인을 키워낼 수 있을까가 이런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지금은? 수많은 관련 연구를 지원하는 곳은 다름 아닌 글로벌 스포츠 의류나 음료 업체다. 운동선수와 과학자들의 순수성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지만, 살짝 입안이 텁텁하긴 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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