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잔향]기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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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도 생활인이다. 하지만 딱하게도 그들에겐 생활인으로서의 자각이 없다. 과학자는 폐쇄 공간에서 자신의 연구를 하는 게 가장 즐거운 생물이다. 세상 흐름을 모른다. 사회 문제에 지극히 무관심하다. 그런 그들을 볼 때마다 엉덩이를 때려주고 싶다.”

앞면에 리뷰한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동아시아)의 저자 마스카와 도시히데 일본 나고야대 교수(77)가 책 말미에 쓴 문장이다. 동아시아 대표가 페이스북에 책 홍보를 위해 올린 글을 본 뒤 빠르게 훑어 읽었다.

저자는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성을 발견한 공로로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듬해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웃 국가에 많은 누를 끼쳤다”며 부채의식을 털어놓았다. 일본의 국가 교전권 포기를 명시한 평화헌법 9조를 지키기 위한 과학자 모임을 결성했던 그는 일본 정부의 법 개정 움직임을 거듭 비판해 왔다. 이번 책에서도 “교전권을 손에 넣으려는 아베 신조 총리의 안하무인 태도는 국민을 깔보는 수작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역설했다.

마스카와 교수는 국가 구성원으로서, 나아가 인류의 일원으로서 과학자의 책무와 사명이 무엇인지 평생 고민하며 용기 있게 발언해 왔다. “연구실 실험의 결과가 오용됐을 때 양식 있는 연구자라면 평생 씻지 못할 자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쓴 그의 글은 국내 과학계도 되새겨 볼 말이다. 뜬금없지만 지난주 프로야구 중계 뒤 한 케이블방송 아나운서가 한 말이 떠오른다. “실수를 미봉책으로 덮으면 더 큰 위기가 닥친다.”

실수가 부여하는 기회는 실수를 저지른 직후에만 주어진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과학자#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마스카와 도시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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