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자기소개서 가슴앓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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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를 표절했다가 불합격 처리된 수험생이 2018학년도 대입에서만 1406명.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도입한 ‘유사도 검색 시스템’을 통해 표절을 걸러냈는데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수험생들은 아주 평이한 질문을 받아들고도 자기소개서 쓰기를 쩔쩔맨다. 자신에 대해 쓰는 것이니 정답이 있을 리 없는데도 사지선다형 문제 풀이에만 익숙해진 탓이다.

▷자기소개서 분량은 최대 5000자(원고지 25장). 이를 채우기 위해 대입에 성공한 선배들의 자기소개서를 베끼거나 짜깁기를 하려 든다. 자기 생각을 글로 옮기기 어려워해 표절뿐 아니라 대필도 광범위하게 이뤄진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맞춤형 자기소개서 공정가격이 100만 원 안팎. 누가 쓰느냐에 따라, 첨삭 횟수에 따라 300만 원까지도 뛴다. 한 입시 컨설턴트는 “학원을 찾거나 선생님 또는 부모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100% 순수 자기소개서는 없다”고 단언했다.

▷하반기 취업 시즌을 맞아 취업준비생들도 자기소개서 쓰기에 끙끙대기는 마찬가지다. 잠깐만 인터넷을 검색해도 자기소개서 작법 교육이나 첨삭, 대필 광고가 주르륵 뜬다. 이런 수험생들을 걸러내고자 기업들은 인공지능(AI)을 서류전형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롯데그룹이 AI 시스템으로 자기소개서 표절을 걸러냈더니 상반기 서류전형에서 2% 정도가 탈락했다. AI는 수천 명의 자기소개서를 사람보다 수백 배 빠른 속도로 검증한다. 공정성 시비가 생길 리 없고, 효율성도 높아 기업들은 더욱 확대할 모양이다.

▷자기소개서에는 화려하거나 현학적인 표현보다는 투박해도 진실을 담아야 한다. 그래야 글을 쓴 사람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를 수 있다. 연애편지든, 자기소개서든, 일기든 진정성이 사람을 움직이는 법이다. 그런데 인간이 아닌 AI가 입학사정관이나 인사담당자로 본격 활약한다면 인간의 진정성은 통할 수 있을까. 인간은 수학이 어렵고, AI는 공감이 어렵다. AI한테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봐야 한다면 다시 입사에 성공할 자신이 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머릿속이 하얘질 취업준비생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자기소개서#유사도 검색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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