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미디어로 억대연봉 신화” vs “뻥 마케팅으로 시장왜곡”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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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SNS스타 ‘인플루언서’ 세계의 명암


온라인 패션몰 ‘스타일 난다’를 6000억 원대에 매각한 김소희 대표, 자신을 내세운 뷰티 브랜드로 22세에 1조 원대 부자가 된 미국 모델 카일리 제너, 연예인급 팬덤을 거느리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대도서관’, ‘밴쯔’, ‘씬님’….

최근 성공 신화의 주인공 대부분은 인플루언서(Influencer).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동하는 1인 미디어를 뜻한다. 일반인으로 시작해 이후 부와 인기를 거머쥐게 된 이들의 스토리는 ‘계층 이동 사다리’가 무너진 지금 현실에서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이 때문에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이들도 늘고 있지만 문제도 적지 않다. 일부 인플루언서의 무책임한 언행이나 검증되지 않은 물건 판매로 사회적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것. 인플루언서 세계의 명암을 들여다봤다.

○ 귀하신 몸, 인플루언서

‘추석 전 금요일엔 한복을 입혀주세요.’

김윤주 씨(38)는 아이 유치원에서 온 안내문을 읽고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즐겨 찾는 ‘셀럽’들의 계정에 들어가니 앙증맞은 아기 한복 사진이 떴다. 계정 3, 4개를 훑은 뒤 딸과 똑 닮은 모델 사진이 걸린 곳에서 한복을 샀다. 예전에 김 씨는 검색은 인터넷, 쇼핑은 ‘쿠팡’ 등 소셜커머스에서 했지만 요즘은 모두 인스타그램에서 한다. 육아 정보, 예쁜 아동복, 맛집, 화장법, 시댁 흉…. 필요한 모든 정보가 그 안에 다 있었다.

“매일같이 그들의 일상을 접하다 보니 어느 순간 친구처럼 느껴졌어요. 댓글로 고민도 나누니까요. 오래 봐온 만큼 그가 권하는 물건도 믿고 사게 되죠.”

셀럽형 인플루언서의 무기는 친근함이다. 보고 듣고 먹고 즐기는 일상을 전시해 팔로어를 확보한 뒤, 스스로를 브랜드화하거나 제품을 판매한다. 대학원생 김선민 씨(25)는 “연예인은 아니지만 빼어난 감각과 럭셔리한 일상을 자랑하는 이들의 일상을 보다 보면 팬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블로그에서 시작해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으로 영역을 확장한 인플루언서는 수없이 많다. 이 가운데 메가(팔로어 100만 명 이상), 매크로(10만∼100만 명), 나노(1만∼10만 명) 인플루언서는 준연예인급 팬덤을 거느린다. 이사배, 포니, 씬님, 헤이지니, 대도서관, 밴쯔 등 메가 인플루언서들은 연예인처럼 소속사에서 관리한다. 개인마다 다르지만 보통 계약 기간은 3년, 수익 배분은 6 대 4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의 마케팅 채널도 이들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메가 인플루언서들은 캠페인당 5000만 원 이상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동영상 인스타그램 게재와 게시물 서너 건, 행사 참석 등을 묶어서 계약한다. 한 유통업체 인플루언서 마케터는 “인플루언서를 팔로잉하는 일명 ‘추종자’들은 충성도가 높아 홍보 효과가 좋다. 대부분 기업이 이들을 전문으로 관리하는 마케터를 두고 있다”고 공개했다.

일부 유통업체는 인플루언서와 손잡고 직접 미디어 채널을 운영하기도 한다. CJ오쇼핑의 모바일 전용 생방송 채널 ‘쇼크라이브’, LF몰의 ‘냐온’, 소셜커머스 업체 티몬의 ‘티비온’이 대표적이다. 롯데홈쇼핑은 아카데미를 열고 인플루언서를 직접 육성할 계획도 세웠다. 이동규 롯데홈쇼핑 홍보팀장은 “기존 인플루언서는 비용이 부담스럽고 리스크도 크다. 참신한 새내기 인플루언서를 발굴해 20, 30대 소비자를 끌어오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 우리 언니? 82피플?

“명품 비슷한 제품을 팔아서 진짜 명품 사고, 차도 사고, 집도 사고. 그러면서 매일 우는 소리 하며 위로해 달라니 눈꼴 시릴 수밖에요.”

SNS에서 물건을 파는 셀럽을 마켓 크리에이터라고 부른다. 최근 5년간 급성장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추종자들은 유행 아이템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어 편리하다며 편을 든다. 반면 온갖 스토리를 갖다 붙여 물건을 파는 ‘반짝 상인’이라는 뜻에서 ‘82피플(빨리(82) 변하는 아이템을 파는 사람)’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직장인 서모 씨는 “좋은 판매자도 있겠지만 옷부터 간장게장까지 돈 되는 모든 것을 파는 모습은 장사꾼 그 자체다. 진심이라며 늘어놓는 일상도 결국 물건을 팔기 위한 수순 같다”며 비판했다. 20대 직장인 이모 씨는 “솔직한 후기를 작성했더니 ‘악플러’로 차단당했다. 물건 팔기 전엔 예쁜 동생이라더니 졸지에 악플러가 됐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반감은 최근 파인애플 식초 사태로 불이 붙었다. 한 업체에서 판매한 파인애플 식초를 먹고 하혈 등 부작용을 겪은 이들이 항의를 하자 업체가 이들을 악플러로 몰아간 것. 인플루언서를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광고 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광고주로부터 협찬받은 제품을 직접 사서 사용한 것처럼 후기를 올리는 마케팅 수법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화장품, 대체 의약품, 다이어트 제품, 소형 가전제품 등에 대한 리뷰를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미국에선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방침에 따라 광고성 게시물을 올릴 땐 해시태그 #ad #sponsored를 붙여 광고임을 알려야 한다. 공정위도 2016년 광고 명시 방침을 내렸으나 소속사에 속한 인플루언서들만 이를 따르는 실정이다.

○ 1%의 성공 신화

누구나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는 시대지만 그 과정이 쉽진 않다. SNS 셀럽들은 자신들의 일이 화려하거나 쉽지만은 않다고 토로한다. 뷰티 인플루언서인 ‘쏭냥’ 송지혜 씨(28)는 인플루언서가 되는 법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올리면 되는 것 아니냐”, “부업으로 도전하고 싶다”는 내용이 주다. 그는 “팔로어 1만 명 이상을 목표로 한다면 확실한 정체성과 각오를 갖고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플루언서는 넘쳐나고 콘텐츠 아이디어는 고갈되다 보니 뒤처지지 않으려고 매일같이 유행어를 공부하며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이 일은 쉬우면서도 위험하다. 자유로운 건 시간뿐”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인플루언서는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셀럽분들은 실제로 만나면 흥이 많고 당당하다. 실제 그 생활을 즐겨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플루언서 마켓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 과거 수익과 관계없이 붙던 광고료는 구독자와 동영상 시청 시간 등 기준이 까다로워졌다. 유튜브는 시청시간 4000시간이 넘어야 광고를 붙일 수 있는 자격을 준다. 한 게임 인플루언서는 “게임은 비교적 일찍 인플루언서 시장이 형성돼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처음엔 조건 없이 게임계 셀럽 ‘모시기 전쟁’을 했는데 지금은 조건이 까다롭다. 다른 분야도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송지혜 씨는 “조회 수 340만을 기록한 국내 유튜브 동영상도 있다. 이건 해외에서도 많이 본다는 건데, 실제 해외 시장을 준비하는 인플루언서가 적지 않다. 업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플루언서를 준비하는 이들은 공모전과 학원을 찾거나 관련 서적을 독학하면서 SNS 스타를 꿈꾼다. 대부분 얼굴이 알려진 셀럽형 인플루언서를 꿈꾸지만, 마케터형 인플루언서도 있다. 개인 신상을 드러내지 않고 페이지를 내세워 활동하는 이들이다. 부업으로 게임 전문 페이지를 운영하다가 전업해 관련 회사까지 세운 손유종 위드공감 대표(30)는 “마케터형 인플루언서의 경쟁력은 개인의 매력이 아닌 전문성이다. 대중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정보를 제공하되 운영자 신분은 철저히 숨긴다”고 말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인플루언서#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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