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에도 번창하는 북한 휴대전화 시장…이유는?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0일 16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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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배, 북한에 있는 제 취재원과 휴대전화로 통화했는데, 북한이 내년부터 개인단위 경작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한다고 합니다.”

2004년 12월 막 수습을 마친 주성하 탈북기자가 이런 보고를 해왔습니다. 2002년 7월 이른바 ‘7·1경제관리 개선조치’로 시작된 김정일 판 개혁개방이 속도를 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북한 접경지역의 취재원은 사실상 목숨을 걸고 북한 내부에 진행되는 경제 변화를 주 기자 편에 알리려 했던 것입니다. 2004년 4월 김정일을 노린 용천역 폭발사고 이후 당국이 개인 휴대전화 사용을 강하게 단속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 취재원은 그런 북한 경제의 변화가 가속화되길 바라는 바램에 위험을 감수했을 겁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들을 교차 취재한 결과 통화 내용이 60%이상 맞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주 기자와 함께 단독 보도를 했습니다(2004년 12월 6일자 A1, 5면). 이후 ‘북한, 가족단위 경작제 도입(2005년 1월 4일자 A1, 4면)’, ‘北, 물품 國定가격 없앤다…이르면 내달부터 기업개혁(2005년 1월 17일자 A1, 5면)’ 등 타 언론사 기사를 앞서 나간 단독기사들이 주 기자와 ‘북한 취재원’간의 휴대전화 통화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최근 ‘북한의 이동통신 연구: 전략변화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정진 KT 남북협력사업개발TF 부장(전 개성공단 지사장)에 따르면 당시는 북한 이동통신 발달사의 네 단계 가운데 세 번째에 해당하는 시기였습니다.

네 시기는 바로 ①당국의 공식 서비스가 개시되기 전 음성적으로 중국의 단말기를 들여와 사용하던 1차 불법사용의 시대(2002년 이전) ②당국이 공식 서비스를 했다가 용천역 폭발 사고로 중단하기까지 1차 공식 서비스 시대(2002~2004년) ③다시 당국의 허가 없이 단말기를 몰래 들여와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사용하던 2차 불법사용의 시대(2004~2008년 말) ④당국이 이집트 오라스콤과 제휴해 공식 서비스를 재도입하고 확장의 준비를 마친 2차 공식 서비스 시대(2008년 말 이후)입니다.


이 박사가 집중적으로 분석한 시기는 마지막 네 번째입니다. 2008년. 아버지 김정일이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지고 북한 최고지도부 내부에 후계 논의가 시작되어 결국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과 김정은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큰 흐름이 시작된 때입니다. 그래프에 나타난 것처럼 이후 북한 이동통신 가입자는 한 번의 후퇴도 없이 증가하게 됩니다. 이 분야를 관장하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따르면 2009년 6만9261명이던 가입자 수는 2011년 200만 명을 넘어 2016년 360만6000명으로 급증했습니다. 현재는 4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2008년 12월 이집트의 오라스콤을 끌어들여 ‘고려링크’라는 이름으로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11년 순수 자국 회사인 ‘강성네트’를 제2 이동통신사로, 2015년에는 ‘별’이라는 제3 이동통신사를 잇달아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이 박사는 논문에서 아버지 김정일 시대에는 용천역 폭발 사고 등 내부요인에 의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북한 이동통신 사업이 김정은 시대 들어 일관되게 성장일로를 걷는 현상과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 핵심인 정치적인 양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정진 박사
이정진 박사
“김정일의 이동통신 전략은 체제안위(정치)가 우선이고 단절적이고 폐쇄적인 형태라면 김정은의 그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발전(경제)을 목표로 지속적이고 개방적인 전략으로 변화하고 있다. 김정일이 자신을 노린 2004년 용천역 폭발사고 이후 이동통신 서비스를 중단했지만 김정일은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불어닥친 ‘아랍의 봄’ 파동에도 이동통신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학대한 것은 상징적인 사례다.”

2009년 11월 30일 화폐개혁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의 사회주의 계획경제 회복 시도를 했다 낭패를 본 김정은이 이후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경제의 시장화와 분권화, 화폐화 현상을 방임하고 있는 것에서도 원인을 찾습니다.

“(김정은 시대 들어) 전국적인 광통신망의 구축, 고려링크의 자본주의적 마케팅 활동, 주민들의 시장활동에서 휴대전화가 경쟁력 확보의 수단화, 과시형 수요 등의 결합으로 이동통신 가입자는 단기간에 팽창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김정은 정권이 이동통신 사업을 통해 주민들이 몰래 축적해 온 달러를 수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 박사는 지적합니다.

“북한 당국에게 이동통신은 공식적으로 국내 경제에 스며든 외화 및 자금을 주민들의 저항 없이 획득할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이 되었다. 이동통신은 효율적인 국가재정의 확보, 통치자금의 마련을 가능하게 하여 통치자의 권력안정에 이바지하게 한다.”

쉽게 말해 정부가 직접 돈벌이에 나서 이동통신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서비스 이용료를 받아 재정을 확충하고, 겹겹이 둘러싸인 국제사회의 제재망 속에서도 재정능력을 일부라도 유지한다는 겁니다. 2009년 화폐개혁을 통해 강제적으로 사적 영역의 달러를 수탈하려 했지만 저항에 부딪히게 되자, 휴대전화와 같은 유용한 경제 수단과 서비스를 제공함하고 그 대가로 달러를 뽑아내는 ‘스마트한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구조는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해질수록 북한 내 이동통신 서비스는 확대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휴대전화를 통한 소통의 활성화는 정보의 유통을 촉진시키고, 강고한 독재의 시스템에 균열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김정은 정권에게 휴대전화는 양날의 칼인 셈입니다. 미국에 한 비핵화 약속 이행을 미적대고 있는 김정은 정권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 국제사회가 제재의 끈을 계속 죄어야 하는 이유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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