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소니의 부활, 도시바의 몰락… ‘버리기 경영’이 운명 갈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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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전자기업들 혹독한 구조조정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열렸던 소니의 강아지 로봇 ‘아이보’ 체험 전시장. 아이가 아이보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열렸던 소니의 강아지 로봇 ‘아이보’ 체험 전시장. 아이가 아이보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1월 12일 일본 도쿄 시부야(澁谷)의 마루이백화점 1층에 소니의 체험 전시장이 열렸다. 전시장의 주인공은 바로 전날 공개된 강아지 로봇 ‘아이보’. 전시장 개장과 함께 사람들이 몰렸다. “손”이라고 외치며 손을 내밀면 아이보는 자신의 앞발을 손에 갖다 댔다. 인공지능(AI) 시스템 아이보는 주인의 습성이나 특징 등을 수집해 상황에 맞게 행동할 수 있다.

이번 아이보는 12년 만에 나온 소니의 신작 로봇이다. 1999년 첫 번째 아이보 공개 당시 소니는 “혁신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 로봇을 15만 대나 팔았다. 이후 아이보는 소니의 경영 악화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다. 2006년 아이보 생산이 중단됐고 수리 서비스인 ‘아이보 클리닉’까지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소비자들은 아이보 장례식까지 치르며 소니의 침체를 슬퍼했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단종 12년 만에 부활한 강아지 로봇에 대해 “아이보의 부활이자 소니의 부활”이라고 전했다.

○ ‘스테(捨て·버리기)’ 경영으로 위기 극복

파나소닉이 만든 일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의 스마트타운. 집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됐다. 후지사와=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파나소닉이 만든 일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의 스마트타운. 집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됐다. 후지사와=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지난달 22일 도쿄 미나토(港)구 고난(港南)에 있는 소니 본사. 최근 새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한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郞) 사장의 첫 경영전략 발표회가 열렸다. 요시다 사장은 지난해 실적을 공개했다. 2017년 소니 매출은 8조5540억 엔(약 83조6615억 원)으로 최근 20년 만에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7349억 엔(약 7조1861억 원)으로 전년(2016년)보다 약 2.5배가 늘었다. 아사히신문은 “TV 컴퓨터 등 전통적인 가전 하드웨어 사업을 과감히 축소하고 게임이나 음악 영화 등 소프트웨어 분야를 주요 사업으로 성장시킨 전략이 통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소니의 추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다. 직원 1만6000명 이상을 감축하겠다고 밝혔고 이듬해 발표된 실적에서 소니는 14년 만에 영업이익이 적자(2278억 엔)가 나는 등 위기가 현실로 나타났다. 이후 8분기 연속 적자, 신용등급 강등 등 소니로서는 수치스러운 뉴스들이 이어졌다.

2012년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 당시 사장 취임 후 혹독한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빌딩과 보유주식 등의 자산을 매각하고 컴퓨터 등 기존의 소니를 대표하던 사업 분야를 정리했다. 그 대신 2015년 공모 증자로 만든 4000억 엔을 자율 주행차의 눈 역할을 하는 ‘이미지 센서’ 사업에 투자했다. 소니는 최근 이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45%로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이 분야는 최근 자율주행차와 사물인터넷(IoT) 시장 확대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소니의 향후 먹거리에 대해 요시다 사장은 IoT, 로봇 사업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에 3년간 최대 1조 엔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자율 주행차에 필요한 센서 개발 등 ‘모빌리티’ 분야에도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세계 시장에서 맹위를 떨쳤던 일본 전자회사들이 2000년대 들어 경영 위기를 맞았다. 전문가들은 엔화 강세에 따른 가격 경쟁력 하락을 경영 위기의 원인으로 꼽았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제도팀장은 “기존 사업에 함몰돼 선제적인 투자를 하지 못한 점 등 일본 기업에도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 전자회사들은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는 이른바 ‘스테 경영’으로 위기를 벗어나고 있다.

파나소닉은 소니보다 체질이 더 많이 바뀐 회사로 평가받고 있다. 이 회사는 4년 전 도쿄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가나가와(神奈川)현 후지사와(藤澤)시 쓰지도(辻堂)에 ‘서스테이너블(지속 가능한) 스마트타운(SST)’을 지었다. 2층 집 600채가 방패연 모양으로 뻗어 있는 이곳은 태양광 패널로 에너지를 만드는 미래형 도시다. 19만 m² 규모의 이 지역은 원래 파나소닉의 전신인 ‘마쓰시타전기(松下電工)’의 공장 부지였다. 2007년 공장 폐쇄 후 이곳에 스마트타운을 만든 이유는 뭘까. 2011년 파나소닉은 한국 등 글로벌 경쟁사들의 약진으로 사상 최대인 약 7800억 엔(약 7조6375억 원)의 적자를 냈다. 이듬해 취임한 쓰가 가즈히로(津賀一宏) 사장은 TV 제조 대신 미래 지향적인 사업에 도전했다. 그중 하나가 자동차 관련 사업이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에 참가한 파나소닉은 가전제품 대신 자동차, 오토바이를 앞세워 배터리와 에너지 시스템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사상 최대 적자를 낸 이듬해 취임한 쓰가 사장은 스마트타운 만들기와 함께 새롭게 주목받고 있던 자동차 관련 사업을 주력사업으로 정하는 모험을 했다.

파나소닉에 따르면 2012년 13.7%이던 자동차 관련 사업 비중은 지난해 21.3%로 늘었다. 같은 기간 TV 제조 부문은 7.2%에서 4.2%로 줄었다. 지난해 파나소닉의 영업이익은 3805억 엔(약 3조7257억 원)으로 쓰가 사장 취임 후 ‘V자 곡선’을 그리며 위기에서 탈출 중이다. 쓰가 사장은 아사히신문의 시사 주간지 ‘아에라’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필요한 모든 것을 사업으로 표현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뒤늦게 ‘버리는’ 도시바


현재 일본은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과감하게 풀고 수출 확대를 위한 엔저 정책을 펴면서 기업들을 하나둘 일으켜 세우고 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그러나 모든 기업이 다 일어서는 것은 아니다”라며 “일본 전자회사마다 구조조정의 방식과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여전히 위기를 맞고 있는 기업도 있다”고 말했다.

사업 중심축을 기기 설비 판매에서 AI와 빅데이터 해석 등 첨단기술 활용 컨설팅 서비스로 재편한 히타치 같은 기업이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반면 히타치와 같은 종합 전자회사인 도시바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도시바, 자력 성장을 단념하다’ 6일 요미우리신문 경제면 톱기사의 제목은 ‘일본 전자기업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130년 역사의 ‘도시바’를 저격했다. 전날인 5일 도시바가 ‘다이나 북’ 등으로 유명한 PC사업을 ‘샤프’에 매각하기로 발표한 것에 대한 분석이다. 도시바 컴퓨터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세계 시장에서 톱을 차지할 정도로 사업이 잘됐지만 저가 공세를 앞세운 중국, 대만 업체들의 약진으로 지난해 96억 엔(약 940억 원)의 적자를 냈다.

도시바의 사업 매각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백색가전을 시작으로 TV, 반도체에 이어 PC 부문까지 이르렀다. 도시바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2006년 인수한 미국 원전회사 웨스팅하우스의 사업 손실이 7125억 엔(약 6조9644억 원)이나 됐고 회계부정이 잇달아 적발되면서 치명타를 입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원전사업을 주도해 온 시가 시게노리(志賀重範) 전 도시바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일본 경제 전문지 ‘도요게이자이(東洋經濟)’는 도시바의 몰락에 대해 “사업 결정 과정이 충분한 논의 없이 파벌, 상명하복으로 이뤄졌고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것이 패착”이라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현재 고강도 구조조정 중인 도시바에 대해 “향후 엘리베이터 등의 인프라나 에너지 사업 등 기업 간 거래(B2B) 사업으로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쿄·후지사와=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소니#도시바#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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