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 화보처럼… 문학잡지도 시대와 호흡해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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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깬 문예지 ‘악스트’ 백다흠 편집장

백다흠 악스트 편집장은 “시와 소설,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에는 문학잡지가 문학 외적인 영역까지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백다흠 악스트 편집장은 “시와 소설,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에는 문학잡지가 문학 외적인 영역까지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문학잡지’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것들이 있었다. 정색하고 봐야 할 것 같은 두툼한 두께와 빼곡한 활자, 난해한 비평. 그런데 부쩍 이 공식을 파괴한 잡지가 많아졌다. 화보집 같은 사진에 감각적인 일러스트, 눈이 시원한 레이아웃에 소설이나 시를 담아낸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격월간 문학잡지 ‘악스트’(Axt·은행나무)가 있다. 30년 넘게 창비나 문지 등 계간지 스타일로 굳어진 한국 문학잡지에 ‘파격의 포문’을 연 첫 잡지였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Axt)여야 한다”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 서문에서 이름을 따 온 악스트가 새로운 실험을 한 지 3년을 맞았다. 한국 문학계가 갖가지 변화의 파고를 겪는 동안 악스트는 1만 권에 이르는 발행 부수와 인지도 면에서 자리매김에 성공했다. 그리고 변화를 선도해 왔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6일 만난 백다흠 편집장(39)은 “가장 단순하게 ‘잡지란 매체 특성에 충실한 잡지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악스트는 표지에서부터 감각적인 작가 사진을 전면에 내세워 눈길을 끈다. 악스트 제공
악스트는 표지에서부터 감각적인 작가 사진을 전면에 내세워 눈길을 끈다. 악스트 제공
악스트 이후 ‘릿터’(민음사), ‘문학3’(창비) 등 비슷한 포맷의 새 문학잡지가 나왔지만 당시만 해도 문학을 이렇게 다루는 건 낯선 시도였다. 신인상과 문학비평, 시 없이 소설만 다룬다는 콘셉트도 특이했다. 백 편집장은 “기존 문학 계간지는 단행본에 가까운 발행물이지 잡지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젊은 독자를 흡수하기도 쉽지 않은 형태였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잡지는 왜 영화잡지처럼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킨포크나 일본의 리빙잡지 등 다양한 형태의 잡지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표지부터 레이아웃까지 파격적으로 만들었지만 처음에는 그도 “‘문단 어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좀 걱정이 됐다”며 웃었다. 하지만 시대에 발맞춘 변화에 20∼40대 독자들은 크게 호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획으로는 첫 호에 실은 천명관 작가 인터뷰를 꼽았다. 당시 천 작가는 대학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문단 권력이 한국 문학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해 화제가 됐다. 백 편집장은 “논란을 의도해 기획했던 건 아니었다”며 “돌이켜보니 새로 출발하는 저널을 믿고 작가가 자신 있게 내질러줬던 목소리 같다”고 말했다.

창간 3년을 맞아 악스트는 변화를 모색 중이다. 가장 큰 변화는 가격. 한 권에 2900원인 가격을 1만 원으로 올린다.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파격적인 가격정책을 유지해 왔지만 ‘너무 많은 희생이 필요한 가격’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다양한 기획을 더할 예정이다. 문학계를 진단하는 르포도 싣고 작가 발굴에도 공을 들일 예정이다.

격동하는 정세와 매일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독자들은 문학에서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쉽지 않은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문학잡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삶을 사는 속도와 리듬이 뉴스의 속도만큼 빨라지고 있어요. 하지만 무한정 빨라질 수는 없으니 결국은 뭔가가 필요한데 문학이 그 역할을 해야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문학에 대한 논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든 ‘문학이 계속 이야기 되게끔 하는 것’ 그게 저희의 몫이겠죠.”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악스트#문예지#백다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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