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승옥]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파악에 55분, 해결에 5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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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상대성이론’을 만든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 1시간이 주어진다면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定義)하는 데 55분을 쓰고, 해결책을 찾는 데 나머지 5분을 쓰겠다.”

당연한 말 같지만 그렇게 간단치 않다. 우리는 대체로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은 소홀히 하고, 해법을 찾는 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곱씹을수록 무릎을 치게 된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약체 베트남이 올해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이라는 기적을 연출했다. 감독 취임 단 석 달 만이었다. 그 과정엔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사람 좋은 그의 ‘형님 리더십’이 우선 조명됐다. 팀워크와 소통이 만든 성과라는 분석이었다. 수긍은 갔지만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비수를 3명 세우는 스리백 등 전술적 측면도 거론됐다. 어느 정도 기여는 했겠지만 수비 시스템을 바꾼다고 팀이 단시간에 환골탈태하진 않는다.

박 감독이 풀었던 중요 문제는 ‘체력’이었다. 베트남 축구는 이전부터 ‘체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런데 박 감독이 실제로 보니 달랐다고 한다. 선수들은 체격은 작았지만 체력은 그런 대로 괜찮았다.

그럼, 뭐가 문제였을까. 박 감독은 좀 더 세밀하게 살폈고, 베트남 축구가 주로 75분에 실점을 많이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건 또 왜 그럴까. 그는 훈련 시간에서 답을 찾았다. “우리 선수들은 보통 1시간 반 정도 훈련했는데, 쉬는 시간 등을 빼면 실제 훈련 시간은 75분 정도였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훈련 시간과 실점 시간 사이에 인과관계를 설정한 것이다.

박 감독은 그렇게 ‘단순 체력’이 아니라 ‘75분 이후의 체력’으로 문제를 새롭게 정의했다. 그 뒤 해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일단 식단을 고단백 메뉴 위주로 짰다. 새로운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만들 시간은 부족했던 상황. 공식 훈련이 끝난 뒤 감독이 직접 휘슬 하나 들고 힘 빠진 선수들을 30분 이상 더 돌렸다. 본인 말에 따르면 ‘구식 훈련’이었다. 박 감독은 “그런데 선수들의 몸과 마음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베트남 선수들은 세 번의 연장 혈투에서 실로 대단했다. 팀워크와 전술은 이런 바탕에서 빛을 발했다.

아시아의 강호인 우리나라는 그 대회에서 4위로 고개를 떨궜다. 여론은 선수들의 기량도, 감독의 전술도 다 문제라고 분노했다. 예상대로 감독은 경질됐다. 새로 사령탑에 오른 김학범 감독은 어깨가 무겁다.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김 감독의 선언은, 피할 수 없는 사명이었다. 이번 대표팀은 기존 멤버에 슈퍼스타 손흥민이 가세할 예정이다. 금메달을 따면 병역특례 혜택이 주어진다. 구성원과 동기부여라는 점에선 좋아졌지만 그만큼 더 민감하고 복잡한 퍼즐을 맞춰야 한다.

김 감독은 “이 팀은 손흥민의 팀도, 김학범의 팀도 아닌 우리 모두의 팀”이라고 말했다. 기량과 전술보다는 ‘팀워크와 소통’을 대표팀이 풀어야 할 중요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구체적으로 문제를 정의해야 한다. 어떤 팀워크와 어떤 소통인지.

이번 대표팀은 ‘골짜기 세대’라는 악평을 받고 있다. 그런데 ‘축구변방’ 베트남이 먼저 보여주지 않았는가. 결국 문제 정의에 달려 있다. 골짜기 세대들도 ‘황금세대’로 환골탈태할 수 있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
#문제#해결#파악#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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