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이진규]원자력 잠수함 확보, 현실적으로 별 실익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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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규 예비역 해군 대령
이진규 예비역 해군 대령
필자는 209급(1200t) 디젤잠수함인 장보고함 함장 시절 2004년 하와이 림팩훈련에 참가해 미국 항공모함과 이지스 구축함 등 30여 척을 가상 격침했다. 1996년과 1998년에는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 조사에도 참여했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 원자력 추진 잠수함에 관한 소견을 밝힌다.

우리나라는 209급 잠수함 9척과 AIP(Air Independent Propulsion·공기불요 추진) 체계를 탑재한 214급(1800t) 잠수함 9척을 보유하고 있다. 또 3000t급 장보고-3형 잠수함 완성도 눈앞에 다가왔다. 모두 분야별로 최고를 자랑하는 잠수함들이다. 북한은 70여 척의 잠수함을 갖고 있지만 1960, 70년대 옛 소련과 중국에서 만든 로미오급(1800t)과 자체 제작한 상어급(300t) 등 소형 잠수정들이다. 다만 신포급(2000t)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등장으로 위협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런 북한의 위협에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원자력 잠수함 확보다. 원자력 잠수함은 운항 속도가 30노트 정도로 디젤잠수함보다 빠르다. 그러나 1척당 2조 원가량의 건조비와 첨단기술이 요구되고 운영·유지 비용도 크다. 한미 정상 간에 원자력 잠수함 보유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있지만 여전히 난제가 산재하고, 당장 사업에 착수해도 1번함 전력화까지는 10년 이상 걸린다. 잠수함은 첨단의 조선 능력과 산업인프라 그리고 자금력을 충족하지 못하면 지금 만들어도 ‘깡통 잠수함’ 신세가 된다. 그래서 모든 여건이 열악한 북한은 깡통 잠수함을 만들고 운영한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이 원자력 잠수함을 건조한다는 말은 신빙성이 극히 낮다.

잠수함은 태생적으로 공격 무기다. 목적대로 운영되면 깡통 잠수함들도 무섭게 보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첨단 잠수함들도 무기력해 보일 수밖에 없다. 잠수함은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언제든지 코앞에서 적을 옥죄는 것이 기본이다. 이런 임무에는 AIP 잠수함이 안성맞춤이다. 특히 북한은 대잠 작전 능력이 매우 떨어져 우리 잠수함들의 행동이 더욱 자유롭다. 지정된 구역 안에서 맞붙는다면 AIP 잠수함이 원자력 잠수함을 이길 승산이 크다. 이동거리가 짧은 한반도 주변의 환경에서 원자력 잠수함이 만능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막대한 예산과 국가적 노력으로 원자력 잠수함 만들기에 몰입해 첨단 잠수함들을 3류 무기로 전락시키고 패배주의만 키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원래 목적대로 사용되지 못하는 잠수함들은 고가의 장식품으로 전락해 바다를 떠돌 뿐이다. 한반도 주변의 전장 환경에서는 원자력 잠수함이 만능이라는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공언하는 북한에 원자력 잠수함의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원자력 잠수함은 통일 이후 여건 변화에 맞게 천천히 검토해도 늦지 않다. 한정된 국방예산으로 시급하게 요구되는 미사일방어체계, 정찰·감시와 정밀타격 전력을 확충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문제다.

이진규 예비역 해군 대령
#원자력 잠수함#잠수함#북한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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