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역사를 흑백으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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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열풍 하루키
난징대학살 등 日 과거사 다뤄… 극우세력서 적잖은 공격 받아
“말을 돌멩이처럼 던지면 안돼… 남은 인생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

“역사에서 순수한 흑백을 가려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이런 단편적인 사고에 대항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말을 따뜻한 것, 살아있는 것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양식과 상식이 필요합니다.”

신작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1, 2권)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68·사진)는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사단장…’에서 난징대학살, 일본과 나치 독일의 동맹을 다뤄 일본 극우 세력으로부터 적잖은 공격을 받았다. 하루키는 “사람들은 ‘흑이냐 백이냐’로 판단하고, 말을 돌멩이처럼 상대에게 던져댄다. 매우 슬프고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그는 ‘기사단장…’ 출판사인 문학동네와 최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밝혔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한 하루키는 “처음에는 ‘소설 같은 건 앞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남은 인생에서 소설을 몇 편이나 더 쓸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악기를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처럼 글쓰기가 변함없이 즐거운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란다.

“1년 반 동안 ‘기사단장…’을 썼어요. 글이 써진다 싶으면 계속 쓰고 다 쓸 때까지 쉬지 않습니다. 따로 구상을 하는 건 방해가 돼요. 생각나는 대로 자연스럽게 쓰죠. 자유로움이 가장 중요해요.”

‘기사단장…’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생각한 바대로 행동하는 것, 자신을 믿는 것’에 대해 자주 곱씹어 본다. 하루키 스스로도 그럴까. “일상생활에서는 의견이나 신념이 꽤 확실한 편이에요. 그런데 근본적으로는 나 자신을 초월한 곳에 존재하는 흐름이나 힘에 순순히 몸을 맡기지 않으면 소설을 쓸 수 없다고 믿고 있어요.”

‘기사단장…’은 동일본 대지진도 다루며 치유를 향해 나아간다. 사회적으로 큰 트라우마를 남긴 재난이 벌어진 이후 문학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그는 “목적을 가지되 목적을 능가하는 시도를 하고 모든 이가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독자들을 향해서는 “30여 년간 변함없이 제 작품을 열심히 읽어주셔서 늘 각별한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 방문 계획에 대해 묻자 “언젠가 그럴 기회가 생기면 좋겠지만 솔직히 공적인 행사를 좋아하지 않아 초대를 받으면 사양하게 된다”고 에둘러 답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무라카미 하루키#기사단장 죽이기#난징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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