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 씨 “교수의 길보다 내겐 감염병과 싸우는 전사가 어울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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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이후 기피직 ‘질본 역학조사관’ 지원 김민경 씨

안정적인 길을 접고 방역 최전선 전사로 나선 김민경 씨가 15일 질병관리본부 앞에서 “고 이종욱 박사(전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를 보면서 키워온 공공의료를 향한 꿈을 펼쳐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청주=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안정적인 길을 접고 방역 최전선 전사로 나선 김민경 씨가 15일 질병관리본부 앞에서 “고 이종욱 박사(전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를 보면서 키워온 공공의료를 향한 꿈을 펼쳐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청주=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방역체계 핵심인 질병관리본부의 사기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현장 인력 10여 명이 감사원 징계를 받았고, 차관급으로 격상된 질병관리본부장 자리는 주요 인사들의 고사로 두 달가량 비어 있어야 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우회적으로 담은 “니가 가라, 오송(본부가 위치한 충북 청주시 오송읍)”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당당히 방역 최전선에 가겠다고 자청한 사람이 있다. 메르스 이후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 채용에서 의사 출신으론 유일하게 신규 임용된 김민경 씨(36·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 씨는 감염병 분야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재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감염내과에서 수련의를 거쳐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이후 전임의(펠로)로 1년을 더 일하기도 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수년 안에 대학병원의 교수로 임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김 씨는 과감하게 안정적인 길을 접고, 공공의료 영역에 도전장을 냈다. “전문의 동기들은 거의 교수를 꿈꾼다. 하지만 모든 감염내과 전문의가 교수가 될 필요는 없다. 감염병은 1 대 1 진료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다. 방역 전문가로서 소신껏 능력을 발휘해보고 싶었다.” 김 씨의 당찬 포부다.

정부는 메르스 후속 대책으로 역학조사관 충원을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우수한 의사의 지원이 많지 않아 고민에 빠졌다. 메르스 사태 후 대대적인 징계로 인해 ‘권한은 적고 책임만 많은 자리’라는 인식이 커졌고, 보수도 전문의 평균 연봉(약 9000만 원)에 턱없이 못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사 출신(가급) 7명 모집에 4명이 합격했지만 1명이 임용을 포기하면서 3명만 남았다. 그나마 3명 중 1명은 질병관리본부 근무 경험이 있는 인력이고, 1명은 임용 연기를 요청한 상태. 사실상 신규 임용은 김 씨가 유일하다.

김 씨는 “나는 특별히 사명감이 큰 사람은 아니다. 단지 고 이종욱 박사(전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를 보며 키운 꿈을 한번은 실행에 옮기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겸손해했다. 하지만 “의사들이 사명감이 없다고 지적하기 이전에 정부가 과감한 투자로 질병관리본부를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처럼 의사들이 가고 싶은 매력적인 조직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놨다. 정부는 김 씨와 같은 우수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비정규직 역학조사관이 성과를 내면 향후 의사 출신 보건행정직 채용 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당시 김 씨는 서울시 감염병관리사업지원단에서 일하며 방역체계의 문제점을 체감했다고 한다. 김 씨는 “정부에서 지침을 줘도 일선 보건 인력은 판단을 내리거나 책임을 지는 행동을 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라며 “선진화된 방역체계에서는 용기를 내서 행동한 사람들이 징계 대상이 되는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용기를 내 행동한 사람이 징계를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그가 꿈꾸는 선진화된 방역체계는 뭘까. 김 씨는 망설임 없이 “미사일을 쏘지 않더라도 최고의 미사일을 갖고 있어야 국방 강국이듯 최첨단 방역 기술과 함께 잘 훈련된 사람들이 언제든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라며 “지카 바이러스 등 신종 감염병이 들어와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준비된 방역관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청주=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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