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우선]각종 위원회가 없어서 한국 교육이 이리 됐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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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이 정도면 ‘위원회를 없애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요? 작년부터 쏟아진 교육위원회가 대체 몇 개인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취임식이 있던 2일 한 교육계 인사와 통화하다가 씁쓸한 웃음이 터졌다. ‘위원회를 없애기 위한 위원회’가 필요하다는 그의 해학적 표현이 딱 맞다 싶어서다.

이날 유 부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내년에 ‘미래교육위원회’ 및 ‘국가교육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대입제도 개편 과정에서 나름 유명세를 치른, 국가교육회의를 확대 개편한 국가교육위는 그렇다 쳐도 미래교육위는 참 뜬금없었다.

유 부총리의 설명에 따르면 미래교육위는 미래교육계획을 만들고 국가의 미래 인적자원 양성 컨트롤타워가 될 조직이다. 그런데 지난해 국가교육회의를 만들 때도 ‘대한민국 교육의 백년대계를 만들 조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미래교육계획’과 ‘백년대계’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보고 또 봐도 동어반복 같은 ‘위원회를 위한 위원회’로 느껴졌다.

교육·과학·산업·노동계 현장 전문가와 학생 학부모 교사 등으로 구성한다는 미래교육위의 위원은 어떠할 것인가. 불현듯 지난해 말 국가교육회의 민간위원 11명의 명단이 발표됐을 때 교육계에 가득했던 냉소가 떠올랐다. 당시 여기저기서 ‘위원들 중 교육계가 인정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왔다. 새 정부 출범에 ‘물갈이’ 된 다른 위원회도 마찬가지였다. 전문성이나 다양성은 둘째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위원들이 주류가 되다 보니 교수 사회에서는 ‘(진보) 색깔을 드러내야 한자리 얻는다’는 말이 나왔다.

위원들 중에는 교육계 인사들조차 ‘누구냐’고 물을 정도로 생소한 이름도 적지 않았다. 알고 보면 김상곤 당시 부총리와 인연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이 중 몇몇은 교육부 내 2개 위원회에 ‘겹치기’로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김 전 부총리의 ‘친정’인 경기도교육청 출신 인사들이 여러 요직을 맡다 보니 ‘경기 라인’이란 말까지 생겼다. 이 때문에 교육계는 새로 구성될 미래교육위와 국가교육위에 대해서도 별 기대가 없는 눈치다.

교육부 안팎에는 이미 각종 위원회가 많다. 대체 얼마나 많은지 파악하기 위해 전희경 의원실을 통해 교육부의 법정·비법정 위원회 현황을 받아 봤더니 9월 현재 법정 위원회가 31개, 비법정 위원회가 25개였다. 법정 위원 수만 668명이었다. 영재교육, 특수교육, 인성교육부터 평생교육 등 다양한 위원회가 있음은 물론이고 교육정책자문위원회 내부 분과에는 미래교육위와 같은 이름을 가진 미래교육분과까지 있었다. 위원회 이름대로라면 우리 교육계의 모든 문제는 진작 다 해결됐어야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지금의 위원회는 오히려 왜 있나 싶은 게 많다. 올 한 해 교육부 법정 위원회의 평균 회의 실적은 4.5회에 불과했다. 절반은 아예 회의를 열지 않거나 서면으로 1번만 한 곳도 있다. 그래도 정부로서는 위원회의 이름에 기대서 새 정책을 펼 수 있고 잘되지 않아도 책임을 전가할 수 있으니 손해 볼 게 없다. 위원들도 그럴싸한 ‘경력 스펙’을 쌓고 ‘거마비’도 챙기니 시쳇말로 ‘꿀알바’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교육 분야는 짧은 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유 부총리로서는 총선 출마를 할 경우 남은 1년 3개월 동안 위원회를 만들어서라도 뭔가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교육부에는 이미 앞선 정권들이 남긴 유물 같은 위원회가 차고 넘친다. ‘위원회 만들기’가 더 이상 교육정책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미래교육위원회#국가교육위원회#유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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