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라서 더 멋진 사쓰마… 그래서 “우마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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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가고시마현 사쓰마반도

태풍이 지난 뒤 찾은 사쓰마반도 서해안의 동중국해. 환상적인 빛깔의 바다와 초록 섬, 우거진 팜트리가 어울려 빚어낸 이 풍경은 태평양의 하와이를 연상시켰다. 해도8경(미나미사쓰마시)은 이 산허리를 감아 도는 해안도로에 조성한 여덟 개 전망소 앞으로 펼쳐지는 비경의 바다 풍광을 말한다. 사쓰마반도(일본 가고시마현)=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태풍이 지난 뒤 찾은 사쓰마반도 서해안의 동중국해. 환상적인 빛깔의 바다와 초록 섬, 우거진 팜트리가 어울려 빚어낸 이 풍경은 태평양의 하와이를 연상시켰다. 해도8경(미나미사쓰마시)은 이 산허리를 감아 도는 해안도로에 조성한 여덟 개 전망소 앞으로 펼쳐지는 비경의 바다 풍광을 말한다. 사쓰마반도(일본 가고시마현)=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일본’ 하면 떠오르는 것. 화산 지진 온천 료칸 스시 라멘 사케 다코야키…. 스모(전통 씨름) 기모노(전통 복장)보다도 이런 게 먼저인 이유. 더 자극적이라서다. 일본과 태평양전쟁을 치른 미국으로서도 마찬가지였다. 항복한 일본에 진주해 연합군사령부를 통해 7년(1945∼1952년)간 군정(軍政)을 펼치는 동안 무장해제와 전범재판, 왕에 대한 신격화 금지 및 헌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인문적 연구도 병행했다. ‘일본의 맛’과 같은 것에 대해.

그건 미국인이 경험하지 못했던 특별함 때문이었다. ‘세이버리’(savory·달지 않고 짭짤하며 칼칼한 맛)란 단어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그 맛. 일본인이 ‘우마이(うまい)’, 우리는 ‘감칠맛’이라 부르는 미감이다. 미국은 생경한 이 맛의 출처를 찾아냈다. 다시마와 가쓰오부시(節)였다. 그 그윽하고 깊은 맛, 손질한 가다랑어를 1년가량 열과 불로 말리고 도중 피어난 곰팡이로 맛이 들게 하는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태어났음을 확인했다.

사쓰마슈조 시음관인 ‘메이지구라’ 판매장. 모래상 인물이 드라마 ‘세고돈’의 주인공 사이고 다카모리다.
사쓰마슈조 시음관인 ‘메이지구라’ 판매장. 모래상 인물이 드라마 ‘세고돈’의 주인공 사이고 다카모리다.
그런데 미국의 일본 연구는 거기서부터 비롯됐다. 맛의 원천과 형성 과정을 기반으로 일본과 일본인의 가려진 실체를 좀 더 가까이서 확인하게 됐다. 인간(왕)을 신의 자손(천손)으로 받들며 목숨 바쳐 충성하는 전체주의와 원시성, 속내는 감추고 표현은 삼가면서도 한순간 칼을 빼 할복하는 극단의 과단성, 남에게 폐 끼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면서도 공동선이라면 서슴지 않고 주저 없이 짓밟는 궤변적 이중성. 이런 이해 못 할 성정을 우마이 연구를 통해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음식은 문화의 총체다. 그 점에서 가쓰오부시는 일본 음식의 진수라 하겠다. 일본이 최초로 개발해 전 세계에 퍼뜨린 화학조미료 MSG는 우마이 그 자체. 그리고 그 실체인 글루탐산 나트륨 역시 일본인(이케다 기쿠나에 도쿄대 교수·1864∼1936)이 발견(1908년)했다. 그 기술은 특허를 받았고 세계 최초 MSG 아지노모토는 제약회사 투자로 상품화(1909년)됐다. 가쓰오부시 원료는 가다랑어이고 그건 일본 전국에서 잡힌다. 하지만 최상품이 만들어지는 곳은 오늘 소개할 사쓰마(薩摩)반도의 마쿠라자키(枕崎)다.

최상품 가쓰오부시는 이렇듯 질감이 도자기와 흡사하다.
최상품 가쓰오부시는 이렇듯 질감이 도자기와 흡사하다.
규슈 남단의 가고시마현은 남북으로 600km가 넘는다. 그래서 온대와 난대에 두루 걸쳐 있다. 그 모양은 치아를 닮았다. 양편으로 사쓰마, 오스미 두 반도가 뿌리처럼 돌출한 모습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곳은 그 왼편(서쪽)의 사쓰마반도. 일본의 맛 우마이의 본산인 마쿠라자키가 그 첫 번째다.

마쿠라자키: 가고시마주오역(탑승장 16번)에서 탄 버스가 마쿠라자키 버스센터에 도착한 건 1시간 40분 만. 지난달 하순, 태풍 셀릭이 가고시마 근방을 지날 때라 강풍이 불어댔다. 이곳 중심은 방파제로 둘러싸인 거대한 어항. 그런데 주변 해안은 강풍이 일으킨 사나운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거센 기세로 연신 강타 중이었다.

그런데도 에비산도리(해안거리)에 줄지은 공장에선 흰 연기가 피어났다. 가쓰오부시 가공장이다. 가까이 가니 비린내가 진동한다. 기계로 발라낸 생선 머리와 내장 뼈에서 나는 것이었다. 어항의 수산시장은 여느 시장과 달랐다. 생물은 전혀 없고 가쓰오부시만 보인다. 가쓰오부시도 여러 종류고 여러 질이다. 최상품은 육모 방망이처럼 단단 매끈하다. 그걸 대패로 밀어 종잇장처럼 깎아낸 것도 따로 판다. 하지만 주종은 건조된 원형 그대로의 가쓰오부시다. 가게 주인은 전용 대패를 보여주며 이걸로 먹을 때마다 깎으라고 알려준다.

일본 최남단 철도선 종착점인 마쿠라자키역.
일본 최남단 철도선 종착점인 마쿠라자키역.
마쿠라자키엔 가쓰오부시 외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그나마 내세울 거라면 철도역과 사쓰마시라나미(さつま白波)란 고구마소주(芋燒酎·이모쇼추) 본포인 사쓰마슈조(薩摩酒造). 마쿠라자키역은 세계 12위(2014년 현재 총연장 기준) 일본 철도(2만3474km)의 최남단 철도선 이부스키마쿠라자키센(가고시마주오 기점·1963년 개통)의 종착역이다. 그래서 역 앞에서 철도가 끊겨 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최남단역 니시오야마(西大山·이부스키시)도 이 철도선의 한 역. 마쿠라자키엔 숙소도 변변찮다. 그나마 관광호텔 이와토가 있어 다행. 어항이 바라다보이는 방파제 바로 앞이라 전망은 기막히다. 폭풍에 거친 파도가 몰아치던 바다를 그날 밤 코앞에서 온전히 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여긴 온천탕 대신 목욕탕이 있는데 물은 온천 못지않았다. 식사엔 기대한 대로 가다랑어가 올랐다. 겉만 살짝 익힌 회로.

해도8경(海道八景): 마쿠라자키시 서쪽, 사쓰마반도 서해안(미나미사쓰마시)은 찾는 이가 많지 않다. 규슈 남서단의 오지여서인데 경치는 기막히다. 동중국해를 향해 추락하듯 내리닫는 초록 산자락이 바다와 만나 해안선의 드나듦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인데 그런 산자락으로 해안도로가 났다. 그리고 곳곳마다 팜트리(야자수) 이파리가 바람에 일렁여 더욱 멋졌다. 그런 풍광을 버스 안에서 차창으로 바라보다 보니 하와이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풍경만큼은 하와이였다.

해도8경은 그 해안도로의 비경 포인트에 조성한 전망소 앞 풍경. 7번(기신칸) 전망소에선 가까이 포진한 바위 지형의 바다 풍경이 눈을 사로잡더니 5번(가사사미술관) 전망소에선 산자락과 바다가 만나 이룬 길고 긴 해안선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가사사(笠沙)는 솜씨 좋은 도지(杜氏·술 만드는 이)를 많이 배출한 고장. 미술관 옆엔 그 전시관(유료)도 있다. 이 두 전망소 사이의 아키메엔 특별한 게 있다. 숀 코너리 주연의 ‘007 두 번 산다’(1967년) 기념비다. 이곳의 섬이 영화에 등장한 걸 알리는 표석이다.

산큐패스
: 사쓰마반도는 산큐패스(SunQ Pass) 남규슈 3일권(사진)으로 둘러본다. 남규슈는 가고시마 미야자키 구마모토 3현. 산큐패스는 니시테쓰(서일본철도·후쿠오카현) 등 규슈 7개 현의 49개사 버스와 페리(일부 노선)를 날수(3·4일)와 지역(남, 북, 전 규슈)별로 이용하는 무제한 이용권. 국내에선 날로 이용자가 늘어 규슈자유여행 필수품이 된 지 오래. 일본어를 할 줄 몰라도 버스여행을 쉽게 할 수 있어서인데 현지 정보가 상세히 수록된 네이버 블로그 ‘큐슈타비’, 수시로 업데이트 발행되는 현지 가이드북(무료)이 그 핵심. 블로거 지원석 계장(니시테쓰 자동차사업본부)이 발품 팔아 수집해 올리는 현지 정보에다 패스 이용자 스스로 여행 후에 전해주는 경험이 축적돼 날로 유용성을 더한다.

산큐패스 3일권은 북부(후쿠오카 오이타 나가사키 사가 등 4개 현) 7000엔, 남부 6000엔, 전 규슈는 3일권이 1만 엔, 4일권 1만4000엔. 하지만 판매처마다 할인 폭이 달라 실제는 더 싸게 살 수 있다. 최근 개장한 니시테쓰그룹 홍보관 ‘디스커버리 큐슈’(서울 종로구 종로19 르미에르 종로타운 A동 1607)에서 방문·택배(착불)로 가장 싸게 판다. 가이드북도 함께 제공.

여행정보: 가고시마현은 규슈 최남단(북위 31도)이라 한겨울에도 ‘따뜻한 남쪽 나라’다. 그러니 겨울 여행의 적지. 가고시마 공항은 대한항공과 저비용항공사의 한국 직항편이 운항되고 공항버스 정류장이 가고시마현은 물론 규슈 전역으로 통하는 버스센터 역할을 한다. 사쓰마반도에선 이부스키(指宿), 오스미반도에선 가노야(鹿屋)가 교통 중심.


▼쇼추향 가득한 가고시마▼

사쓰마란 이름은 에도시대 이곳의 영지였던 사쓰마(薩摩) 번(藩)에서 왔다. 그리고 NHK의 올 대하드라마 ‘세고돈(西鄕どん)’의 무대로 주인공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降盛·1828∼1877)는 메이지 당시의 영주. 정한론(征韓論·한국 정벌주장)을 펼 정도로 호전적 인물이다. 사쓰마 번 역시 기질이 거친 고장이었다. 사케 같은 발효주 대신 쇼추 같은 증류주 애음도 그런 풍토와 무관치 않다. 물론 중국과 가까워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런 가고시마는 증류주에서도 특히 고구마로 만드는 이모쇼추의 발상지. 남미 원산의 고구마가 여기로 상륙해서다.

일본 쇼추 역사는 길지 않다. 우리나라와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증류 방식이 메이지시대(1868∼1912년)에 완성된 만큼 기껏해야 200년 정도다. 사쓰마슈조의 시음관인 ‘메이지구라’(明治藏·‘구라’는 양조장·마쿠라자키)는 그 역사를 담은 작명이다. 여기서 소주 증류를 개시한 건 1936년. 온가고시마현 거리 광고판에 흔한 ‘시라나미(白波)’가 그것이다. 이 이름은 태풍 때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해안을 강타하는 사나운 파도에서 왔다.

그런데 요즘 메이지구라엔 찾는 이가 늘었다.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맞은 데다 사쓰마반도가 무대인 대하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어서다. 하지만 메이지구라에선 더 이상 쇼추가 증류되지 않는다. 고풍스러운 주조장을 전시관으로 개조해서다. 대신 지역 명산 ‘가고시마 혼카쿠 쇼추’(本格燒酎·가고시마현에서 가고시마산 고구마만 사용해 단식 증류 방식으로 만든 쇼추)가 판매 중이다. 메이지유신 150주년 및 세고돈 기념 한정판 쇼추(여기서만 구입 가능)가 인기다.

해도8경 북단의 가사사엔 위스키 마니아만 아는 자그만 증류소가 있다. 혼보(本坊)슈조의 ‘마르스 쓰누키 증류소(Mars Tsunuki Distillery·사진)’인데 위스키 증류소로는 일본 최남단이다. 1949년 혼보가(家)가 ‘일본 위스키의 침묵하는 개척자’ 이와이 기이치로와 더불어 창업한 회사인데 위스키 생산은 1960년 야마나시현에서다. 당시 기술책임자는 이와이의 후원으로 스코틀랜드에 유학해 일본 최초로 증류기술을 배워 온 마사타카 다케스루(1894∼1979). 일본 최초 위스키 증류소인 야마자키(山崎)와 닛카(Nikka)의 창업자다. 이 증류소에서 생산한 위스키는 아직 상품화 되지 않은 상태. 그래도 시설(증류기 저장고) 투어는 할 수 있다. 증류소 옆 고풍스러운 집은 1933년 건축한 혼보가의 저택. 시음과 구매는 여기서 한다. 대표 브랜드인 마르스는 저팬알프스 산악의 고마가타케 중턱 산중(해발 798m)의 신슈증류소(나가노현)에서 생산, 숙성됐는데 애호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멋진 위스키(몰트·블렌디드)다.
혼보슈조의 신슈증류소에서 생산된 위스키 마르스(Mars).
혼보슈조의 신슈증류소에서 생산된 위스키 마르스(Mars).

사쓰마반도(일본 가고시마현)=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일본 여행#사쓰마#산큐패스#가쓰오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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