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脫종교 시대… 종교 없는 삶은 공허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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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없는 삶/필 주커먼 지음·박윤정 옮김/420쪽·1만8000원·판미동

종교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는 시대에 종교 없는 삶은 어떤 걸까. ‘종교 없는 삶’의 저자는 “편견과 달리 불안하지도 공허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터키 이스탄불에 이슬람 사원과 교회가 함께 있는 모습. 판미동 제공
종교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는 시대에 종교 없는 삶은 어떤 걸까. ‘종교 없는 삶’의 저자는 “편견과 달리 불안하지도 공허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터키 이스탄불에 이슬람 사원과 교회가 함께 있는 모습. 판미동 제공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무종교 문화와 종교 없는 사람들을 연구하는 학자의 책이라니. 내용도 짐작이 간다. 기존 종교를 비판하고 종교 없이도 살 만하다는 내용일 터. 반발심이든 궁금증이든 종교를 가진 이로서 책장을 넘기고 싶어졌다.

저자는 “탈종교화는 세계적인 추세”라고 단언한다. 미국에서는 지난 25년 동안 무종교인이 2배로 늘었다. 18∼29세 미국인의 3분의 1이 종교를 갖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1970년대 초엔 예배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답한 미국인이 9%에 불과했다. 사실 한국도 이런 경향성에 놓여 있는 듯하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무종교인은 56.1%를 차지했다. 1985년부터 첫 조사 이래 가장 높은 수치란다.

왜 그럴까. 종교는 그간 정치적 보수주의와 결탁이 잦았다. 낙태 불법화, 동성애 반대 등 추구하는 가치가 맞았기 때문이다. 우파 정치인들이 기독교인들의 의제를 포용했던 1990년대부터 미국에선 ‘공화당원=종교인’이란 인식이 자리 잡았다. 최근 국내에서도 시끌벅적한 종교계 인사들의 부정부패도 탈종교화를 부추긴 요인 가운데 하나다.

영국 역사학자 캘럼 브라운은 “역사적으로 아이들과 남편이 종교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만든 것은 여성들”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가족의 종교적 관심도 자연스레 줄었다. 종교에 의문을 품고 있지만 표출하지 못했던 이들이 인터넷을 매개로 결속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저자는 많은 무종교인들을 만나며 “종교가 없는 삶은 공허할 것”이라는 종교인들의 인식에 반기를 든다. 정체성과 믿음, 성향은 다르지만 무종교인들도 내면의 도덕성, 인간애, 연대의식 등을 중요시했다. 그가 만난 마약 중독에서 벗어난 한 여성은 “중독 이후의 공허감을 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로 채웠다”고 당당히 말했다. 좀 세게 말하자면, 무종교인이 보기에 종교인은 “도덕을 (신에게) 아웃소싱하는 것”일 뿐이다.

“종교 없는 사람들이 종교와 아무 상관이 없을지는 몰라도 절망에 젖어 있거나 불운한 망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들은 오히려 건강한 윤리적 토대 위에서 예의바르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이고 놀랄 만큼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삶은 꽤나 ‘종교적’으로 보인다. 삶의 중심을 외부가 아닌, 내면에 두고 자신을 성찰한다는 점에서만 종교인과 차이가 있다. 종교의 핵심인 자기성찰과 사랑을 비종교인들도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넘길 책장이 얼마 남지 않을 때쯤, 엄숙해진다. 책의 결론은 “비종교가 무조건 옳다”거나 “종교는 쓸모없다”가 아니다. 무종교의 실체를 이해하면 할수록 ‘가장 종교적인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찾아온다. 종교인에게는 의지하던 종교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무종교인에게는 종교 없는 삶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침서가 될 수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종교 없는 삶#필 주커먼#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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