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 ‘이지앤모어’ 안지혜 대표 “생리대 없어서 학교 못 가는 아이들 더는 없어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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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생리대는 사회 문제”
생리대 전문 쇼핑몰 창업해 저소득층 아이들 돕기 시작

27일 만난 사회적기업 ‘이지앤모어’ 안지혜 대표가 내년 초 출시 예정인 생리컵 시제품을 두 손으로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안 대표는 2년 전부터 매달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생리대를 무상 지원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7일 만난 사회적기업 ‘이지앤모어’ 안지혜 대표가 내년 초 출시 예정인 생리컵 시제품을 두 손으로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안 대표는 2년 전부터 매달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생리대를 무상 지원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광고에서는 ‘마법에 걸리는 날’이라고 포장했지만 저소득층 여자아이들에게 ‘그날’은 두려움 그 자체다. 2년 전 ‘깔창 생리대’ 이슈가 터지기 전까지 돈이 없어 생리대를 사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27일 서울 강남구 개포디지털혁신파크에서 만난 ‘이지앤모어’의 안지혜 대표(32)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2016년 3월 설립된 이지앤모어는 생리대 전문 쇼핑몰로 저소득층 여자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생리대를 지원하는 사회적기업(취약계층에게 일자리 제공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조직)이다. 지난해 일회용 생리대 위해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대용품으로 주목받은 생리컵을 국내에 처음으로 들여오면서 널리 알려졌다.

○ 단골식당과 남편의 한마디가 터닝포인트

안 대표는 4년 전까지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의 인생은 단골식당을 찾다 바뀌었다. 아시아 요리 전문점인 단골식당은 베트남, 태국 출신 이주여성이 직접 요리하는 곳이었다. “그 식당은 결혼이주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기업 ‘오요리아시아’가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사회적기업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죠. 때마침 사람을 모집한다길래 덜컥 지원했습니다.”

오요리아시아에서 기획업무를 맡은 그의 연봉은 전 직장보다 반으로 줄었지만 얻은 건 더 많았다. 낯선 나라에서 열악한 생활을 하던 결혼이주여성들이 식당에서 일하며 자립하는 과정을 보면서 성취감을 느꼈다. 사회를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여보, 원래 생리대가 이렇게 비싸?” 어느 날 남편이 물었다. 너무 익숙해서 낯선 질문이었다. 생리대는 가격을 따져 살지 말지 고민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남편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인터넷을 뒤졌다. 실제 국내 생리대 평균 가격(18개)은 약 6000원으로, 2010∼2017년까지 8년간 생리대 가격 인상률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2배에 달했다. 해외보다 최대 1.8배 비쌌다.

일주일 뒤 창업을 결심했다. “비싼 생리대는 모든 여성이 겪어야 하는 사회문제잖아요. 사회적기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신생 기업이 수익을 내는 데 모든 인력과 역량을 집중해도 벅찼을 텐데 왜 사회적기업이었을까. “저소득층 여자아이들에게 생리대를 지원하는 게 창업 목표였어요.”

○ “이젠 ‘그날’에도 학교에 갈 수 있어요”

안 대표가 구상한 사업 모델은 생리대와 마스크팩 등 여성용품이 들어 있는 상자 하나를 사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똑같은 상자가 기부되는 방식이었다. 2016년 4월 270만 원을 목표로 크라우딩 펀딩에 도전했다.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들까지 선뜻 지갑을 열었다. 한 달 만에 목표액을 채웠고, 150명의 아이들에게 상자를 기부했다. 며칠 뒤 깔창 생리대 이슈에 힘입어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첫 펀딩에 성공하고 7개월 뒤 기부 방식을 바꾸었다. 펀딩 방식으로는 매달 필요한 생리대를 지속적으로 기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지금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입할 때마다 자동으로 기부 포인트가 아이들에게 제공된다. 아이들은 이 포인트로 월 최대 1만2000원어치의 상품을 구입한다.

이지앤모어가 돕고 있는 여자아이는 현재 560명으로 늘었다. 사회공헌단체와 지역아동단체가 소개해준 아이들이다. 이들은 생리대를 살 형편이 안 되지만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의 무상 생리대 지원 사업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기부한 생리대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억5000만 원이 넘는다. 이지앤모어는 아이들에게 생리대 사용법과 교체 주기를 알려주기 위한 출장 성교육도 하고 있다. “조손가정 또는 부모와 따로 사는 아이들이라 성교육을 받거나 물어볼 데가 없거든요.”

사회적기업가로서 가장 보람찼던 때가 언제인지 묻자 그는 한 여고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생리대 살 돈이 없어 ‘그날’이면 학교에 가지 않던 아이였어요. 생리대를 지원받으면서 학교에 마음 놓고 갈 수 있게 됐다며 고마워했어요.” 그가 기부하는 건 생리대에 불과하지만, 달라지는 건 아이들의 인생이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깔창 생리대#이지앤모어#생리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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