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한 도시생활이 싫어요”… 귀농하는 日 2030 직장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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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대졸 취업률 98%의 역설
출퇴근-경쟁 스트레스에 지쳐… 삶의 행복 찾아 농촌으로 떠나

최근 일본에서는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껴 농촌으로 내려가는 청년이 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즈오카현 후쿠로이시로 내려와 
멜론 농사를 짓는 이시카와 히로토 씨, 카피라이터를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녹차 농사를 짓는 안마 고스케 씨, 딸기 농사를 짓는 
다카하시 아키히토 씨(왼쪽부터). 시즈오카·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최근 일본에서는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껴 농촌으로 내려가는 청년이 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즈오카현 후쿠로이시로 내려와 멜론 농사를 짓는 이시카와 히로토 씨, 카피라이터를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녹차 농사를 짓는 안마 고스케 씨, 딸기 농사를 짓는 다카하시 아키히토 씨(왼쪽부터). 시즈오카·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너 진짜 돌아갈 거야?”

2년 전 대학 졸업을 앞둔 이시카와 히로토(石川拓人·24) 씨에게 친구들이 진지하게 물었다. 회사 취직을 위해 도쿄 같은 도시행(行)을 선택한 친구들은 농촌으로 가겠다는 이시카와 씨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도쿄 옆 동네인 가나가와(神奈川)현에서 대학을 다닌 이시카와 씨는 4학년이 되던 해 고향인 시즈오카(靜岡)현 후쿠로이(袋井)시에 돌아가 부모님의 멜론 농사를 이어받기로 마음을 굳혔다. 회사에 취직해도 승진이 쉽지 않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얘기를 자주 접하던 그에게 “농촌에 젊은 일꾼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더 솔깃했다.

○ 지옥철, 경쟁이 싫어 시골로 가는 日 청년들

지난달 20일 낮 도쿄에서 서남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후쿠로이시에서 만난 이시카와 씨는 비닐하우스를 들락거리며 멜론 가지를 손질하고 있었다. 이날 후쿠로이시의 낮 기온은 35도로 비닐하우스 안은 습식 사우나 같았다.

그가 매일 관리하는 비닐하우스는 모두 10개. 아직은 ‘초보 농부’지만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농사의 매력”이라며 뿌듯해했다. 더 좋은 멜론을 만들기 위해 그는 동네 청년 15명과 함께 ‘멜론농사연구회’라는 학습조직도 만들었다. 친구들과 다른 길을 간 지 3년째인 그는 “(농사를 짓는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은 98%로 1997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손 부족에 직면한 기업들이 취업 준비생들을 모셔 가는 분위기가 나타날 정도다.

이런 가운데 취업을 하지 않거나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시골로 소위 ‘턴 백(turn back)’을 하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만원버스 출퇴근, 끝이 없는 야근, 동료와의 경쟁 등 빡빡한 도시 생활에 지친 나머지 귀농을 통해 위안을 얻기 위해서다.

안마 고스케(安間孝介·39) 씨도 6년 전까지 도쿄 시부야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직장인이었다. 열심히 일을 해도 의뢰인이나 회사 상사 등에 의해 업무 성과가 매겨지는 것에 좌절을 느꼈다. 그러던 중 농업기술을 가르치는 전문학교를 알게 되면서 아내 고향인 후쿠로이시에 내려가 3.5ha 규모의 녹차 밭에서 농사를 짓게 됐다.

그는 일조시간을 늘려 단맛을 내는 테아닌 성분 함량을 높인 녹차를 만들어 경쟁력을 높였다. 이 녹차에 자신의 성(姓)을 딴 이름 ‘안마세이차(安間製茶)’를 붙였다. 안마 씨는 “날씨에 따라 농사의 성패가 좌우돼 어려울 때도 있지만 내가 일을 주도해 나갈 수 있고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 동일본 대지진 이후 “내 행복 찾겠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내 농업 종사자 175만4000명 가운데 청년 농부라 불리는 49세 이하 종사자 수는 17만7000명으로 약 10%를 차지했다. 올해 초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귀농에 관한 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귀농자 연령별로는 30대(22.8%)가 가장 많았고 20대(21.8%)가 그 뒤를 이었다. 귀농 이유에 대한 응답은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서”(47.4%) “일이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싶어서”(30.3%) “도시의 소란을 피하고 싶어서”(27.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2011년 3월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이 계기가 돼 귀농을 결심한 청년도 있다. 5년 전까지 도쿄의 여행사를 다녔던 다카하시 아키히토(高橋明仁·36) 씨는 자연재해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본 후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평소 산이나 바다를 자주 찾았던 그는 “자연 속에서 살아야겠다”는 답을 내리고 후쿠로이시에 정착해 딸기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수입이 과거에 비해 30% 이상 줄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 대졸자 취업 98%의 역설… 지자체도 반겨

청년 농부가 늘면서 일본에서 열리는 귀농 관련 박람회에는 20, 30대 직장인이 몰리고 있다. 지난달 28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도쿄국제포럼에서 열린 ‘신 농업인 페어’에는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들 외에도 농업법인으로 전직을 하려는 정장 차림의 직장인이 적지 않았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지방자치단체들과 영농법인 관계자들은 ‘꿈의 농촌’, ‘여유가 넘치는 농촌으로 오세요’ 같은 희망찬 표어가 적힌 포스터를 벽에 붙이며 장점을 홍보했다.

행사를 연 일본 채용정보업체 리쿠르트잡스의 후카세 다카노리(深瀨貴範) 영업총괄부 담당은 “대학 졸업 전에 취업이 결정돼도 입사를 하지 않으려는 청년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들이 귀농한다면 고령자뿐인 지방에도 균형이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농촌 일손 부족, 고령화 등은 일본 정부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귀농을 적극 장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토 가즈에(佐藤一繪) 농림수산성 취농·여성과장은 “농촌 활성화를 위해선 젊은 세대의 유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귀농자의 자녀 의료비 지원부터 주택 건축 개조 지원, 농업 관련 창업 시 금융 지원 등 지자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원책이 나타나고 있다.

시즈오카·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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