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위원장이 조카 콕 집어 “난 저 친구가 마음에 드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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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SR 채용비리 2명 구속

2016년 8월 서울 강남구 수서발 고속철도(SRT) 운영사인 ㈜SR 사무실. 신입 역무원 채용을 위한 면접이 진행됐다. 여성 지원자 김모 씨가 들어서자 인사 담당 간부 A 씨(47·구속)가 옆자리 면접관의 어깨를 ‘툭툭’ 쳤다. 면접관들의 질문은 주로 김 씨를 향했다. 답변이 끝나면 “말투도 친절하고 인상이 좋네요”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김 씨는 91.3점의 높은 면접점수를 받아 합격했다. 사실 직전 서류평가 때 김 씨는 73점을 받았다. 145등으로 커트라인(110등)에 미달했다. 하지만 서류평가 점수를 조작한 덕분에 면접까지 보고 최종 합격했다. 조작을 지시한 건 A 씨. 그가 사적으로 알고 지내던 여성의 딸이 바로 김 씨였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5년 7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진행된 SR 공채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업무방해)로 A 씨 등 전직 간부 2명을 구속하고 김모 전 대표 등 1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5일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청탁 등을 통해 입사한 직원은 김 씨 등 24명. 그중에는 서울의 한 갈빗집 주인의 딸 정모 씨도 있었다. 정 씨는 2년 전 200 대 1이 넘는 경쟁을 뚫고 신입사원 공채에 합격했다. 정 씨의 합격도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된 것이었다. 정 씨는 서류접수 마감 후 지원했다. 서류평가 점수도 110등이었지만 2등으로 조작됐다. 면접점수도 바뀌었다. 갈빗집 단골손님이었던 전직 간부의 입김 덕분이었다.

나머지 22명은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SR 두 회사 전·현직 임원의 조카와 자녀들이었다. ‘한 식구’ 앞에서 면접관들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2015년 7월 경력직 공채의 면접위원장을 맡은 영업 담당 간부 박모 씨(58·구속)는 다른 면접관에게 한 응시자를 가리키며 “나는 저 친구가 마음에 드네”라고 말했다. 박 씨의 조카였다.

2016년 8월 신입 공채 당시 한 면접관은 특정 지원자에게 아버지 직업과 성함을 묻더니 “아, 기억난다. 내가 코레일에서 아버지와 같이 일했다. 잘 계시느냐”고 말했다. 당시 면접장에 함께 있던 지원자는 “경찰로부터 ‘최종 합격했다가 탈락 처리된 피해자였다’는 전화를 받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3년을 준비했는데 ‘금수저는 이길 수 없구나’라는 생각에…”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경찰은 청탁자 20여 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일부는 SR노조 간부인 이모 씨(52·불구속)에게 “뒷돈을 건넸다”고 털어놨다. 부정 입사자 11명이 이 씨를 거쳤다. 이 씨는 코레일노조 간부 출신으로 주요 간부들과 가까운 사이였다. 합격 후 청탁자들은 이 씨의 차명계좌에 200만 원부터 3700만 원까지 입금시켰다. 이 씨는 1년간 약 1억 원을 받았다.

부정 입사자 탓에 합격권에서 밀려난 피해자는 100명이 넘는다. SR는 이들을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 가이드라인’에 따라 구제할 방침이다. SR 관계자는 “채용비리 연루 직원과 부정 입사자에 대해 재조사와 징계위원회를 거쳐 퇴출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배준우 jjoonn@donga.com·주애진 기자
#면접위원장#조카#경찰#sr채용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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