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돌린 동료들… 女팀추월 산산조각 난 팀워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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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국민 분노… ‘국대 박탈’ 靑청원 30만건

눈물은 흘렸지만…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대표팀 김보름이 20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보름 오른쪽은 백철기 감독.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눈물은 흘렸지만…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대표팀 김보름이 20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보름 오른쪽은 백철기 감독.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많이 반성하고 있으며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노선영 따돌리기’ 논란을 일으킨 김보름은 기자회견 내내 고개를 숙였다. 눈물을 닦아내기도 했다.

한국 여자 팀추월대표팀의 김보름(25)과 백철기 감독(55)은 20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논란은 19일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벌어졌다. 김보름-박지우(20)-노선영(29)으로 구성된 한국은 3분03초76으로 골인하며 8개 팀 중 7위에 그쳤다.

김보름과 박지우는 노선영보다 한참 먼저 결승선에 들어왔다. 보통의 경우에는 처지는 선수를 뒤에서 밀며 함께 보조를 맞춘다. 팀추월은 마지막 세 번째 주자의 기록으로 성적을 매기기 때문에 뒤처지는 선수를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김보름과 박지우는 체력이 떨어진 동료를 버려두다시피 한 채 레이스를 이어갔다. 경기 후에는 김보름의 발언이 노선영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이 비쳐 문제가 됐다. 동료애를 버린 듯한 모습 때문에 비난이 쏟아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보름과 박지우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청원이 하루 만에 30만 건을 넘어섰다.

김보름은 “출전한 선수 3명이 3위를 목표로 했다. 그러려면 1차로 4강에 진출했어야 했다. 제 임무는 6바퀴 중 3바퀴를 앞에서 책임지는 것이었다. 랩타임(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29초대로 끊는 게 제 역할이었다. 여기에만 신경 쓰다 뒤처진 (노)선영 언니를 챙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경기 전날 세 선수의 컨디션이 좋아 목표를 4강으로 높여 잡았다. 선영이가 먼저 ‘내가 중간에 있는 것보다 뒤에서 따라가는 게 기록 향상에 더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해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선영이가 뒤처졌다는 사실을 선수들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관중의 함성 등으로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노선영에 대한 사과의 말은 없었다.

팬들은 “관중 함성 때문에 듣지 못했다면 다른 팀 선수들은 어떻게 감독 말을 듣느냐”고 반박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동료들의 페이스를 보면서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할 종목에 출전한 선수들이 함께한 선수의 상태를 보지 못했다는 해명에 납득하기 힘들어하는 분위기다.

이날 기자회견에 불참한 노선영은 곧바로 언론을 통해 백 감독의 말을 반박했다. 노선영은 “내가 맨 뒤로 가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전날까지 제가 2번(가운데)에 들어가는 거였는데 경기 당일 워밍업 시간에 ‘어떻게 하기로 했느냐’고 물어보셔서 ‘저는 처음 듣는 얘기인데요’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어려움이 있었지만 점점 화기애애하게 훈련했다”는 백 감독의 말에도 “훈련하는 장소도 달랐고, 만날 기회도 별로 없었다. 분위기도 별로 좋지 않았다. 대화를 별로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 감독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거짓말을 하겠느냐. 나만 들은 게 아니다”고 노선영의 말을 재반박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노선영의 대표팀 합류 과정에서부터 잡음이 불거졌다. 노선영은 올림픽 개막을 10여 일 앞두고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행정 착오로 대표팀에서 제외됐다. 쇼트트랙 국가대표였다가 암으로 숨진 동생 몫까지 하기 위해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려던 노선영은 큰 충격을 받았다. 국가대표까지 반납하려 한 노선영은 러시아 선수가 도핑으로 탈락하면서 다시 올림픽 대표로 합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북받쳐 연맹을 비난했다. 노선영은 “특정 선수들이 따로 훈련한다. 팀추월 훈련을 한 번도 함께 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김보름은 당시 노선영이 폭로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이 때문에 노선영이 대표팀에 복귀한 뒤 한동안 어색한 관계가 지속됐다. 평소 노선영과 김보름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체대와 다른 대학 출신의 파벌싸움 결과라는 주장이 있지만 노선영과 김보름 등은 모두 한국체대 출신이다. 이번 사태는 연맹의 행정 착오에서 비롯됐으며 올림픽을 앞둔 선수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진위를 떠나 한국 대표팀의 팀워크는 큰 타격을 받았다. 노선영이 21일 열리는 팀추월 7, 8위 순위결정전에 나서겠다고 밝힌 가운데 나머지 두 선수는 출전 여부가 불투명하다. 심리적인 충격을 받은 김보름이 24일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강릉=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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